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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원로' 찾아나선 증권사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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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대우證 연구원, 서예가 송천 정하건 대담집 출간

숨은 '원로' 찾아나선 증권사 애널리스트 김정환(45) KDB대우증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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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주식시장의 숨은 진주를 캐내던 애널리스트가 이번엔 원로(元老)를 찾아 나섰다. 박스권 장세도 골칫거리지만 '이 땅에 원로는 있는가'라는 통렬한 의문이 그를 여의도 밖으로 이끌었다.


김정환(45) KDB대우증권 수석연구원은 최근 '필묵도정(筆墨道程)'이라는 제목의 대담집을 내 서예가 송천(松泉) 정하건(80) 선생을 조명했다.

정하건 선생은 한국 서단의 대표적인 원로 서예가다. 1957년 중앙대 법대 1학년 때 제6회 국전에 입선한 이후 58년째 붓과 먹을 벗 삼고 있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있었다. 시류에 일절 편승하지 않아 국전에서 수없이 탈락의 쓴맛을 봐야 했다. 당시 서예계에서는 국전 심사위원 등 인맥을 관리하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선비 정신, 스승인 검여(劍如) 유희강 선생 밑에서 체득한 예술혼이 그를 받쳐주는 든든한 밑천이었다. 결국 세상이 알아봐주기 시작했다. 국전에서 처음으로 입선한지 19년 만에 특선을 했고 24년 만에 추천작가가 됐다. 이후 여러 서예 단체들을 이끌며 서예계 발전에 공헌했다.

노서예가의 도정을 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소개하게 되었을까. 알고 보니 애널리스트가 아닌 서예인로서 대담집을 쓴 것이었다. 김 수석연구원은 증권가의 대표적인 차티스트(기술적 분석전문가)이면서 서예가, 서예평론가, 화가 등 다양한 타이틀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담집에서 김 수석연구원은 자신의 존재를 최소화했다. 대화의 방향, 흐름에만 조금씩 관여하고 나머지는 오롯이 정하건 선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 수석연구원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품위 있는 원로의 부재라고 생각했다"며 "서예계의 큰 어른이자 삶의 스승인 정하건 선생의 진면목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숨은 '원로' 찾아나선 증권사 애널리스트 서예가 송천(松泉) 정하건(80) 선생



대화는 서울 인사동 송천서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3개월간 진행했다. 정하건 선생의 작업 공간인 송천서실은 1974년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3000~4000명의 회원이 서실을 거쳐 가는 동안 정하건 선생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러면서 전국 농협에 걸렸던 '신토불이(身土不二)' 제액을 비롯해 조계사·해인사 현판, 이승만·최규하 전 대통령 비문 등으로 명성을 얻었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에게 서예를 가르치기도 했다.


서예가로서 남부러울 게 없는 성취를 이뤄냈어도 정하건 선생은 결코 우쭐하거나 곁눈질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한국서가협회장, 국전 운영위원장 등 '감투'를 쓰면 잡음이 생기지 않았다. 스스로도 "사심으로 기웃대지 않았고 명예를 지켰다"고 담담히 고백했다.


이병철 회장을 지도했던 시간조차 서예에 더욱 정진하는 계기로 삼았다. 정하건 선생은 1980년대 7년여간 이 회장과 함께 하면서 "사람마다 저마다의 위치와 직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돈에 대한 욕심을 끊어버리고 삶의 진리를 다시 배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삼성그룹 회장실을 드나든 사연은 함구하다 훗날에야 조심스레 꺼내 놨다.


최근 6번째 개인전을 치른 정하건 선생은 아직도 꿈이 많다. 상수(上壽)에 있을 전시회를 위해 다시금 붓을 잡으며 그는 말한다. "스스로 만성(晩成)형이라 생각하고 있다. 100세가 되면 서예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멘토가 과잉인 시대다. 여전한 '빨리빨리' 사회에서 설익은 가르침은 금방 뒷전으로 밀려난다. 정하건 선생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삶 자체를 통해 은은한 가르침을 선사한다. 그 울림은 크고 장중하다. 그의 필체처럼.


김정환 수석연구원은 "이번 대담집 집필은 정하건 선생이 걸어간 길을 고스란히 되밟는 과정이 아니라 그가 가지 않았던 길, 가고자 했던 길, 가다가 만 길까지 함께 파악하는 작업이 될 수 있었다"며 "대화를 통해 정하건 선생은 자기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한 또 다른 자기를 나타내며,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넘어 있을 수 있는 자기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팔순에 이르러 '아직 이룰 게 남았다'는 대가(大家)의 모습. 삶의 향기로 전해지는 감동에 400쪽이 지루할 새 없이 넘어간다.


◆ 필묵도정(筆墨道程)
김정환 지음 | 다운샘 펴냄 | 448쪽 | 3만원




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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