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 만성신장질환의 주범…허용 기준치 더 낮춰야
국내 연구팀, 낮은 농도에서도 인체에 심각한 영향 규명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납(Pb)의 습격이 만만치 않다. 아주 적은 양이 인체에 들어가더라도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노출되는 납 중독이 만성신장질환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국내 연구팀이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낮은 수치에 장시간 노출되더라도 신장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여서 주목된다.
생활 속에 납 중독 위험은 곳곳에 있다. 이에 따라 납 허용 기준치를 더 낮춰야 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인체의 주요 위험물질 2위로 꼽히는 납은 대기, 토양, 생활환경 등 다양한 경로로 인체에 노출된다. 집안의 페인트, 안료와 염료 등의 주원료로 만들어지는 장난감, 학용품과 화장품 등을 통해 어린이에게 쉽게 노출된다.
국제적 가이드라인으로 정상 성인 기준으로 '혈액 내의 납 농도 10μg/dL 이하'가 제시되고 있다. 역학조사를 통해 이 보다 낮은 5μg/dL 이하 농도에서도 납이 만성신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신장독성을 유발하는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국내 연구팀이 밝혀낸 것이다.
연구팀은 혈액 내의 납은 99% 이상이 적혈구에 축적되는 것에 착안했다. 이를 통해 연구한 결과 납이 적혈구와 신장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쳐 신장독성을 유발한다는 것을 규명했다.
혈중 납 농도가 높아지면 적혈구 세포막 표면에 포스파티딜세린이 노출되고 신장에 있는 신세뇨관세포는 이런 적혈구를 제거하는 식세포 작용을 하게 된다. 신장 안으로 들어온 적혈구가 파괴되면서 적혈구 헤모글로빈 내의 철(Fe)이 신장에 축적됨을 알아냈다.
포스파티딜세린(Phosphatidylserine, PS, 인지질)은 세포막을 구성하는 인지질로서 정상일 때는 주로 세포내막에 존재하는데 활성화되면 세포외막(표면)으로 노출된다. 신세뇨관세포(Renal tubular cells)는 신장 세뇨관을 구성하는 세포로 주로 재흡수와 배설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이번 연구에서 식세포활동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철이 신장에 축적되면 신장세포에 산화적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그 결과 신장에 손상이 생긴다. 만성신장질환을 유발한다. 이번 연구 성과는 증가하는 만성신장질환과 혈중 납 농도 간의 관계를 규명하고 적혈구와 신장 간의 상호작용 조절 등으로 만성신장질환을 제어하는 예방과 치료법 연구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유해 중금속인 납은 인체에 축적되면 신경계, 순환계 이상은 물론 성장 지연 등 많은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로마제국 멸망의 한 원인으로 주장되기도 했다. 고대 로마시대 때 귀족들은 납 그릇에 끓인 음료수를 마셨다. 귀족이라는 신분을 뽐내기라도 하듯이.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귀족들은 직접 우물물을 길어 마시는 게 아니라 집안까지 끌어 왔다. 집안까지 상수도 파이프를 연결했는데 바로 납 파이프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두고 로마는 '납중독'으로 패망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납중독으로 로마의 엘리트층들에게 통풍 같은 심각한 질병을 불러왔고 이로 인해 로마의 패망이 빠르게 진행됐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서울대 약대 정진호 교수 연구팀이 수행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연구결과는 환경분야 국제 학술지 엔바이런멘털 헬스 퍼스펙티브(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 온라인판 10월 10일자(논문명 : Erythrophagocytosis of Lead-Exposed Erythrocytes by Renal Tubular Cells: Possible Role in Lead-Induced Nephrotoxicity)에 실렸다.
정 교수는 "국내 만성신장질환 환자는 전체 인구의 약 15%"라며 "이번 연구결과를 토대로 납 노출과 신장질환의 상관성 검토와 납의 관리방안 제시 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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