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실라' 조권, 오페라 립승크 압권…'드라큘라' 스모키·빨간머리 김준수 새로워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올 여름 뮤지컬 시장에서 단연 화제작은 '프리실라'와 '드라큘라'다. 두 작품 모두 국내 무대에서 첫 선을 보이는 라이선스 대작이다. 각각 조권, 김준수라는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고, 독특하고도 화려한 무대 장치로 입소문이 났다. ('프리실라에는 LED조명 3만개가 켜진 버스 세트가 등장하고, '드라큘라'는 국내 최초로 4중 회전 무대를 이용한다.) '프리실라'는 동명의 호주 영화가 원작이고, '드라큘라'는 그 유명한 브램 스토커의 동명 소설을 가지고 왔다.
두 작품을 여러 가지 공통분모로 엮을 수 있지만, 작품의 색깔은 판이하게 다르다. 여장남자들의 긴 여정을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다룬 '프리실라'가 알록달록 총천연색이라면, 인간과 대립하는 드라큘라 백작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라큘라'는 무채색에 가깝다. '프리실라'의 세계에서 주인공들은 잃어버렸던 꿈을 찾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게 되며, 가족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반면 '드라큘라' 속 인물들은 공포의 대상과 맞서 싸우며,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다.
◆ 쇼뮤지컬의 정석 '프리실라'
'프리실라'를 싫어할 관객은 아마 없을 듯하다. 그만큼 대중적인 감각이 뛰어난 작품이란 뜻이다. '여장남자'들이 주인공이란 점을 최대한 내세워 관객들이 가지고 있을 편견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끝내는 깨뜨려준다. '프리실라'는 원래 1994년 테렌스 스탬프, 휴고 위빙, 가이 피어스 등이 출연한 동명의 호주 영화가 원작이다. 2006년이 돼서야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호주에서 빅히트를 친 이후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로까지 진출했다.
주인공 버나뎃, 틱, 아담은 남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인물들이다. 전성기 시절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드랙퀸(여장남자)으로 이름을 날렸던 '버나뎃'은 지금은 남편마저 죽고 홀로 남게 됐다. '아담'은 제2의 마돈나가 되길 꿈꾸는 사고뭉치 드랙퀸이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픔이 있다. 이들을 이끌고 여행길에 오르는 '틱'은 드랙퀸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어린 아들이 어떻게 바라볼까 전전긍긍한다. '프리실라'는 이들이 타는 버스의 이름이다. 프리실라를 타고 호주 동부 시드니에서 서부 앨리스까지 가는 긴 여정 동안 이들이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풍성한 가발, 몸매를 드러내는 화려한 의상, 과장된 화장 등 드랙퀸으로서 이들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음악이다. 1970~80년대를 풍비한 히트 팝송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나온다. 펫 샵 보이스의 '고 웨스트(Go West)', 글로리아 게이너의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이 적재적소에서 흥을 돋우고, 마돈나와 티나 터너, 신디 로퍼 등의 노래는 반갑기까지 하다. 화끈한 볼거리 속에서도 작품이 건네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프리실라'는 성적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선을 뛰어넘어, 통쾌하게 '다름'을 인정하는 결말로 또 다른 감동을 준다.
Tip : 캐스트를 비교해가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담' 역할을 맡은 조권이 버스 위에서 오페라를 립싱크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미스터쇼'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김호영의 '아담'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버나뎃' 역할을 맡은 고영빈은 여자보다 더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며, 조성하는 손끝에서부터 걸음걸이까지 여성적인 디테일을 살렸다. 9월28일까지 LG아트센터.
◆ 고전의 힘 '드라큘라'
'드라큘라 백작'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소재다. 1987년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가 소설을 내놓으면서 '드라큘라'가 흡혈귀의 전형적인 모델이 됐다. 해외에선 2001년에 처음으로 뮤지컬로 만들어져 2004년에는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했지만 흥행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이를 다시 국내 제작진이 가지고와 한국 관객들의 입맛에 맞게 고친 것이 이번 작품이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호흡을 맞춘 연출가 데이비드 스완과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또 다시 뭉쳤다.
이번 작품에서 중점을 둔 점은 드라큘라 백작의 사랑이다. 내용은 다소 신파적이다. 드라큘라 백작은 옛 사랑을 닮은 여인 '미나'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이미 약혼자가 있는 '미나'는 드라큘라 백작에게 빠져드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쓴다. 벰파이어 헌터로 명성이 높은 반 헬싱 교수가 드라큘라를 잡기 위해 추적에 나서면서 '미나'는 드라큘라를 좋아하면서도 그를 없애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무대는 어둡고 음침하며, 관능적이다. 배우들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4중 회전 무대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한국 관객들이 좋아하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무난하다. 높은 음역대를 소화해야 하는 드라마틱한 구성의 노래가 대부분이지만,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과 같은 감동을 주진 못한다. "제2의 '지킬 앤 하이드'를 탄생시키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오히려 작품을 평면적으로 만들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다소 빈약한 스토리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결말을 배우들의 연기가 상쇄시켜준다. 어느 새 뮤지컬계의 흥행 보증 수표로 자리잡은 김준수는 이번 작품에서 온 몸의 에너지를 모두 발산해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등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선아는 '위키드'의 하얀마녀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차분하고 청순한 '미나'역을 소화한다. 9월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Tip : 시각적인 측면에서 이번 '드라큘라'는 확실히 새롭다. 검정색 가죽바지를 입고, 스모키 화장을 하고, 빨간 머리를 한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마치 1970년대 유행했던 영국 글램록(화려한 패션과 외모를 강조하는 록) 스타처럼 보인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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