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가액, '석달 번 돈' 톡 털어야 할 금액…낸드플래시 분야 놓고 한·일 경쟁에 업계 큰 관심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일본 반도체 회사 도시바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기술 유출 혐의를 주장하며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1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SK하이닉스의 분기 영업이익에 맞먹는 규모다. 낸드플래시 반도체 시장에서 한ㆍ일 양국이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이번 소송의 향방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1일 도시바에서 소장을 받았다고 공시했다.
도시바는 3월 도쿄지방법원에 자사 제휴업체인 샌디스크에 근무했던 기술자가 낸드플래시 관련 기밀을 SK하이닉스에 전달했다며 일본 경찰과 법원에 차례로 고소와 소송을 제기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기술정보 파기, 이를 이용해 제조한 낸드플래시 생산과 판매 금지를 요구했다"며 "아울러 1조1112억6633만1000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액도 청구했다"고 밝혔다.
도시바가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역대 SK하이닉스의 분기 최대 영업이익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 1조1645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이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추격을 허용한 도시바의 견제구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소송이 한ㆍ일 양국의 반도체 자존심 대결로 비춰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도시바는 1987년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해 '낸드플래시 원조'로 불렸지만 국내 기업에 추격을 허용하며 지금은 삼성전자에 이어 2위에 머물러 있다.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7.4%로 1위를 차지했고, 도시바(31.9%), 마이크론(20.1%), SK하이닉스(10.6%) 순이다. 삼성전자가 끌고 SK하이닉스가 받쳐주며 국내 반도체 빅 2가 낸드플래시 시장을 주도하자 한국 업체를 상대로 차례로 견제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 다음으로는 삼성전자가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도시바가 5월초 낸드플래시 사업에 향후 3년간 7조원 가량의 설비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힌 것도 한국 타도 움직임의 연장선에 있다는 해석이다.
일본 정부도 도시바를 암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올초 기자회견을 통해 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수립을 강조해 우회적으로 한국 기업 압박에 나섰다. 도시바가 일본 정부의 영향권 아래 있는 마스터 트러스트 신탁은행, 일본 트러시티 서비스 신탁은행 등 금융권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이라는 점도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업계 관계자는 "1조원이 걸린 이번 소송은 낸드플래시 선두 한국과 낸드플래시 원조 일본의 자존심 대결로 볼 수 있다"며 "낸드플래시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한ㆍ일 양국의 경쟁은 앞으로 더욱 뜨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소장을 면밀히 검토한 후 대응할 것"이라며 "향후 원고 청구 기각을 적극 주장해 입증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