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보다 투자비율 높아…증가세 둔화는 '고민'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연 매출 1000억 이상을 기록한 벤처가 1년 새 9%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아낌없는 기술개발(R&D) 투자로 특허보유를 늘리고 해외시장을 개척한 결과다. 하지만 기업 개수 증가세가 역대 최저라는 지적이 제기되며 향후 성장동력에 대한 우려가 남았다.
◇대기업·중기보다 성장성 월등 = 중소기업청(청장 한정화)은 21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지난해 매출 1000억원 이상을 달성한 벤처기업 수는 지난해 대비 38개(9.1%) 증가한 454개라고 밝혔다. 이는 조사를 처음 시작한 9년 전에 비해 6.7배 증가한 수치다. 중기청은 지난 2005년부터 매년 벤처기업 성공모델 확립을 위해 '벤처천억기업조사'를 진행해왔으며 올해도 벤처 확인을 받은 회사 6만9801곳을 대상으로 경영성과를 분석해 이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벤처천억 기업의 평균 매출액은 2229억원으로 지난해(2060억 원) 대비 8.2% 증가, 중소기업(4.6%)과 대기업(0.6%)의 매출액 증가율을 크게 상회했다. 평균 영업 이익은 155억원으로 지난해(141억원) 대비 9.9% 증가했으며, 이 역시 같은 기간 중소기업(4.2%)과 대기업(4.6%)의 영업이익 증가율을 상회했다.
세계 시장에서도 벤처천억 기업의 경쟁력은 빛을 발했다. 454개 기업 중 산업부의 세계일류 상품에 선정된 기업은 19개사로, 전체 133개 중 14.3%를 차지했다.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도 유가증권과 코스닥, 코넥스를 합해 총 228개사(51.7%)에 달한다. 실력을 바탕으로 2곳 중 1곳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창업 이후 투자받은 벤처천억 기업 수는 193개사로 전체의 43.8%에 달했다. 기업당 평균 투자유치건수는 6.3건, 평균 투자유치금액은 52억8000만원을 기록했다.
벤처천억 기업이 불황 속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올린 이유는 결국 '투자'에 있었다. 기업당 평균 R&D 비용은 61억 원이지만,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2.7%로 중소기업(0.7%)과 대기업(1.2%)보다 2~4배 높았다. 국내외에서 보유한 특허권 수도 평균 53.6건으로 일반 벤처기업 평균(3.5건)의 15배나 많았다.
해외진출 확대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체의 78.2%가 연평균 587억원 규모의 수출을 하고 있었으며, 매출액 대비 수출비중은 25.9%로 중소제조업(14.0%)과 대기업(17.4%)보다 높았다.
중기청은 벤처천억 기업의 핵심 성장 요인이 기술혁신과 글로벌 진출에 있다고 판단, 향후 벤처확인제도에서 기술성 평가를 강화하고 전문엔젤을 통해 글로벌 진출을 돕는 등 맞춤형 정책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과거대비 성장성 둔화…창조경제로 해결 = 하지만 눈부신 벤처천억기업의 성과 뒤에도 '그림자'는 있다. 누적 벤처천억기업 수는 계속 늘고 있지만 증가폭은 지난해(9.2%)에 이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간 벤처천억기업이 30% 이상 성장하던 과거에 비하면 만족스럽지 못한 성과다.
정부와 벤처협회도 이에 대해 우려의 뜻을 표했다. 남민우 벤처협회장은 "현재의 고무적인 결과는 2000년대까지 뿌려진 벤처 씨앗이 지금까지 남아서 우리의 먹거리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벤처천억기업의 증가율이 점점 죽고 있고, 이대로라면 5년 뒤에는 누적 숫자도 증가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벤처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없이는 곧 성장동력도 잃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 회장은 "벤처 거품 이후에는 획기적으로 벤처에 투자하는 정책이 나오지 않았다"며 "지금이라도 씨앗을 뿌려야만 5~10년 뒤에 벤처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나오고, 벤처 르네상스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벤처기업 수도 문제로 지적됐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위치한 벤처천억기업은 2012년 235개에서 260개로 25개가 늘어난 반면 경남권은 5개가 증가하는 데 그쳤고, 강원·제주·호남권은 제자리걸음했다. 충청권·경북권 등은 오히려 수가 줄기까지 했다.
남 회장은 "지역적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며 "판교가 벤처기업들의 요람으로 발전한 것처럼 지방에도 창조경제 혁신센터를 두고 창조경제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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