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의 하이라이트는 현란한 기술의 공격수가 아니라 듬직한 골키퍼의 몸놀림이라고 본다. 특히 승부차기에서 강한 정신력으로 상대 팀의 슛을 막아 조국에 승리를 바친 브라질의 세자르, 코스타리카 나바스 선수의 선방하는 모습은 가히 예술이었다. 덩치 큰 세자르가 승부차기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울먹이는 장면은 승부 세계의 냉혹함을 보여줬다.
축구경기는 골을 많이 넣는 팀이 이긴다. 그리고 골을 먹지 않으면 적어도 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골키퍼만큼 중요한 포지션도 없다.
정부조직의 골키퍼는 누구일까. 과세 관청이다. 그들 없이는 나라살림을 꾸릴 수 없기 때문이다. 들어올 돈(세입)을 정확히 계산하고 나갈 돈(세출)을 견제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 조직보다 보수적이면서 신중하고, 고집과 함께 자부심이 있다. 고시 합격자 중 성적 우수생들이 몰린다.
그런데 그들이 이상해졌다. 줏대가 없어졌다. 전월세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방안이 세 차례나 수정된 점이 그 대표적 사례다. 정부 정책이 처음 발표된 올 2월26일에는 소규모 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해서만 분리과세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일주일 만인 3월5일, 2년 동안 비과세하겠다고 물러섰다. 다시 석 달 뒤인 6월13일에는 주택 수가 아닌 임대소득 금액을 기준으로 과세하겠다고 수정했다. 3주택 이상이라도 임대소득이 2000만원 이하이면 14% 단일세율을 적용하고, 과세유예 기간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다고 했다.
그래 6ㆍ13 과세 방안이 최선이라고 치자. 왜 처음부터 이를 채택하지 않았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평범한 납세자의 머릿속엔 부동산 세제하면 주택 수를 떠올린다. 1세대 1주택자에 대한 비과세가 그 경우다. 부동산에서 주택 수가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그런데 6ㆍ13 과세 방식대로라면 양도소득세 비과세도 주택이 아닌 금액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할 것인가.
과세 제도를 둘러싼 혼선은 지난해 8월에도 있었다. 관계부처는 물론 청와대 보고까지 마친 2014년 세법개정안에 대해 근로소득자들이 저항하자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지 일주일도 안 돼 연간 근로소득 5500만원 이하는 세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 쪽으로 급수정했다. 일주일 앞도 못 내다본 이유는 무엇일까. 능력 부족인가. 그렇다면 다음 달에 나올 2015년 세법개정안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정답은 과세 관청이 줏대가 없어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니 그 테두리 안에서 이리저리 세입을 짜야 하는 고충과 한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세제와 세법에 대해 얼마나 깊이 알까.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청와대 등을 설득했어야 했다. 답답하다.
오죽하면 행정부의 세제실 기능을 입법부로 옮기자는 주장까지 나올까.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주체가 돼 세입과 세출을 결정하고 행정부는 단순 집행만 맡기자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외국의 법 환경과 우리나라 경우를 잘 따져 신중히 결정할 일이다.
누가 뭐라 해도 세입예산 편성의 제1원칙은 국가재정의 건전성 확보다(국가재정법 제16조). 이 대원칙을 지키지 않으니 줏대 없이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국가재정 정책은 많이 벌어 많이 쓰든지, 적게 벌어 적게 쓰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7월부터 기초연금법 시행으로 이미 '많이 쓰는 길(세출)'로 접어들었다. 그럼 '많이 버는 일(세입)'만 남았다. 이 일을 맡은 기관은 과세 관청이다. 국가재정의 골키퍼 격인 과세 관청은 보다 뚜렷한 목적의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승부차기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해 슈퍼 세이브하는 골키퍼를 본받자.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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