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심은 南기업…걸어온 길과 달려갈 길
입주 기업 125개, 북한 근로자 수 5만2200여명…간식인 초코파이는 13톤→2000톤으로 확 늘어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그때만 해도 100만평이나 되는 땅에 공장이라곤 단 두 개 밖에 없는 허허벌판이었는데 이제는 6만명을 먹여살리는 어엿한 공단이 되었네요."
오는 30일로 개성공단이 준공 10돌을 맞는다. 10년 전 이날 준공식에 참석했던 문창섭 삼덕통상 회장은 27일 본지 인터뷰에서 "척박한 땅에 심은 씨앗이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난 것처럼 뿌듯하다"는 감회를 밝혔다. 강산이 한 번 변할 동안 천안함ㆍ연평도 사태, 폐쇄 조치등 크고 작은 잡음에도 꿋꿋하게 생존한 개성공단을 바라보는 기업인들의 심정은 '감격' 그 자체다.
◇북한에 경제를 심다 = 개성공단은 지난 10년 새 외형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입주 당시인 2004년 15개에 불과했던 기업 갯수는 125개로 증가했으며, 연간 생산액은 1491만달러에서 2012년 4억6950만달러로 증가했다. 지난해 폐쇄 사태로 생산액이 2억2378만달러에 그치기도 했지만, 올들어 예전 추세를 회복했다. 북한 근로자 수는 2005년 6013명에서 현재 5만2289명으로 8.6배 뛰었으며, 최저임금은 50달러에서 70.35달러로 40% 올랐다. 근로자들에게 간식으로 제공하는 초코파이 양만 해도 같은 기간 13톤에서 2000톤으로 늘었다.
개성공단만 변한 게 아니다. 개성공단이라는 존재는 북한의 경제 체제를 크게 흔들어 놨다. 중소기업 CEO들도 개성공단이 통일에 기여하는 가장 큰 요소를 '북한 변화 유도(27.6%)'와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23.8%)'으로 꼽았을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성공단 CEO는 "남한 시장경제를 북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퍼뜨리는 계기가 된 것이 개성공단"이라고 귀띔했다.
초코파이는 변화의 대표적 사례다. 북측 근로자들에게 주는 대표 간식 중 하나에 불과했던 초코파이는 10년 만에 북한 사회의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으며 암시장에서 개당 10달러에 팔리고, 제삿상에까지 오르는 존재가 됐다.
◇개성공단 통일한국 주춧돌 = 많은 전문가들이 통일에 15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낸 신간에서 통일에 걸리는 시간을 15년 안팎으로 예상했으며, 권구훈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도 24일 열린 세미나에서 남북의 금융통합에 15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통일이 되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30년 4만3000달러, 2050년 8만6000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친 것도 이같은 전망에 기초한다. 남북통일을 통해 내수시장 침체와 인력난을 해소하고 유라시아 시대의 주축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개성공단은 남북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시장경제가 정착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는 토대 역할을 할 수 있다. 제2, 제3의 개성공단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지난 2월 해주ㆍ남포 등을 제 2개성공단 후보지로 꼽으며 "통일 대비를 위해 북한 진출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제2ㆍ제3의 개성공단을 마련해 남북간 경제 격차를 줄이는 것이 정치적 통일의 선결과제라고 강조한다. 조봉현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개성공단은 자연스럽게 남북간 경제격차를 줄이고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 모델"이라며 "앞으로 제2ㆍ제3의 개성공단을 통해 남북간 경제적 이질감을 줄여 나가야 정치적 통합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 이를 위해서는 남북간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6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가 열리는 등 기류가 많이 완화됐지만, 지난해처럼 폐쇄 사태가 재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개성공단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단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며 "남북이 경제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정경분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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