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식민사관 논란 일자 로비서 칼럼, 사진 등 들고 격앙된 어조로 반박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자진사퇴론이 확산일로인 상황 속에서 나홀로 청문회 준비에 들어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고립무원이 가속화되는 형국이다. 문 후보자는 19일 자신을 둘러싼 친일·식민사관에 대해 총리 후보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직접 과거의 칼럼을 들고 일일이 해명을 했다. 여권 내에서도 사퇴기류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직접 나서 논란을 불식시키고 여론을 뒤집으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문 후보자는 이날 오후 후보자 집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로비를 통해 퇴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30여분간 일방적인 기자회견을 했다. 문 후보자는 "저는 우리 현대 인물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안중근 의사님과 안창호 선생님"이라며 "저는 나라를 사랑하셨던 분, 그분을 가슴이 시려오도록 닮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분들을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데 왜 저보고 친일이다, 왜 저보고 반민족적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지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다른 얘기는 다 들어도 저보고 친일이라고 그러고, 반민족적이라고 말씀을 하면 저는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도 했다.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은 중국의 뤼순 감옥과 재판정을 자신이 직접 다녀온 사실을 공개하면서, 그 소감을 바탕으로 쓴 자신의 과거 칼럼의 일부를 읽기도 했다. 문 후보자는 또 세종대에서 '국가와 정체성'이라는 강의를 나간 사실을 알리며 강의안의 일부도 낭독했다. 남산의 안중근기념관에 자신이 헌화한 사진을 준비해 공개하기도 했다.
기자출신이지만 언론에 대한 불신은 더욱 악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문 후보자는 현장에 있는 기자들을 향해 "사실이면 사실대로 보도해 달라"면서 "여기서 이런 얘기, 저기서 이런 얘기 소문대로 보도하면 얼마나 나의 명예가 훼손되는가. 그것을 모르는가.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확인"이라고 주장했다.
문 후보자는 지난 12일 KBS가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자신이 장로로 있는 온누리교회의 과거 강연을 보도하면서 역사관 논란을 촉발시키자 다음 날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 명의로 발표문을 내어 "온누리교회 발언 동영상에 대해 일부 언론의 악의적이고 왜곡된 편집으로, 마치 후보자가 우리 민족성을 폄훼하고 일제식민지와 남북분단을 정당화했다는 취지로 이해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과 부합되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드리며, 당해 언론사의 보도책임자를 상대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법적대응에 나설 것임을 밝힌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는 이날과 같이 출근이나 퇴근길에 자신에 대한 논란에 대해 건별로 직접 해명, 반박하는 일방향 소통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자는 "제가 개인적으로 그동안 공부를 하면서 '이게 혹시 국민께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문제가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그 점에 대해 정말로 송구스럽고, 또 '국민 여러분과 언론인 여러분께 이해를 구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래서 제가 출퇴근을 하면서 청문회 준비를 하면서 느낀 소감을 한 가지씩만 말씀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는 이날 로비에 선 채로 20여분 넘게 해명과 호소를 이어갔다. 그리곤 "제가 너무 흥분했다. 오늘은 이것으로 끝내고 제가 내일 또 여러분 뵙겠다"며 발언을 마무리하고 질문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이에 따라 문 후보자의 거취는 박 대통령이 순방에서 돌아온 뒤 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여론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민족 비하 발언에 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등은 논란이 역사관-식민사관-영토주권 등으로 번지면서 악화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연일 하락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7~18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신뢰도 95%ㆍ오차범위 ±3.1%P)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1.4%로 일주일 사이에 9.7%포인트가 하락했다. 올 들어 40%대로 하락한 것은 처음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문창극 후보자의 친일 관련 발언이 보도된 지난 11일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부정평가다. 부정평가가 취임 후 처음으로 50%를 넘어서 51.7%까지 올라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10%가량 높게 나타났다.
세종=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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