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野인재도 기용하는 大탕평인사를
반대를 설득해내는 혁신의 진심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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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조선의 군주 정조는 창덕궁 희정당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었다. 이날 즉위식을 가진 왕은 당쟁으로 찢긴 국론을 크게 정비하고 민심을 안정시킬 대책을 고민했다. 할아버지 영조가 야심차게 펼쳤던 탕평(蕩平)의 대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는 왕실을 주무르는 척신(戚臣)과 대립해온 청류(淸流)세력들을 중용하기로 했다. 정치에서 소외된 남인과 적대세력으로 간주되어온 벽파까지 참여시켜 초당(超黨)적인 집권세력을 갖추고자 했다.
다음엔 인재 양성에 관한 플랜을 짰다. 우선 세종 대의 집현전과 같이 규장각을 갖춰 인재양성의 창구로 삼고 학문정치를 해나가고자 했다. 규장각엔 검서관을 두었는데 여기엔 지금껏 정치에서 배제되었던 서얼(庶孼)들을 배치하여 재능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 지역인재 선발에 관심을 지니고 영남인물고, 호남절의록을 편찬하게 한다.
또 경제에 대해 고민한다. 영조 대에 시행된 통공(通共)정책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의 이런 기획은 15년 뒤(1791) 신해통공으로 정리된다. 먼저 금난전권을 혁신한다. 금난전권은 육의전(六矣廛)과 시전상인(市廛商人)이 상권을 독점하기 위해 정부와 결탁하여 난전의 설립을 막아왔던 규제였다. 정조는 육의전만 남겨놓고 시전의 권한을 대폭 줄여 도성 내에서 소상인들이 자유롭게 상업활동을 하도록 하였다.
2003년 독일의 당시 총리 슈뢰더는 과도한 복지로 국가발전이 정체상태에 이르러 '유럽의 병자'로 불리는 나라를 새롭게 만들 대기획을 한다. 7년 뒤를 겨냥한 '어젠다 2010'은 전국민이 누리고 있던 사회복지 혜택을 축소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가 기조의 대수술 작업을 담고 있었다. 이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독일 대기업 폴크스바겐의 인사당당자인 페테하르츠를 참여시켜 하르츠 개혁법을 만든다.
상호 갈등을 빚어온 이데올로기 경쟁은 일단 접고 정당 간 대연정으로 실용정치를 국론화해나갔다. 독일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고통 분담에 동참하기 시작했고 적대적인 사회그룹 간에 단일목표를 향한 일체감이 조성되었다.
2014년 6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정권 출범 때 힘을 주어 강조했던 '국민 모두가 행복한 100% 대한민국'과 이를 위한 국민대통합이 1년 남짓 만에 심각한 정도로 일그러져 있는 사실에 고민하고 있었다. 지난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침몰 참사는 민심을 뒤흔들었다. 국민의 안전을 전혀 책임지지 못하는 국가의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재난을 키운 관(官) 조직의 먹이사슬과 권력화, 부패와 파렴치에 대한 비판이 휘몰아쳤다.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리더십 또한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이 틈을 타고 반정부 기류가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갔다.
6월 지방선거가 치러진 건 이때였다. 여당과 야당의 판세가 비슷하여 누가 승자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나, 국가 불신이 팽배하고 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여권으로서는 선방(善防)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6ㆍ4 민심에 대한 해석을 여권에 면죄부를 준 것으로 읽을 수는 없다. 국민의 슬픔과 분노는 여전히 물밑에 잠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의(民意)는 그간의 일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이후의 일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준엄한 명령을 내린 것에 가깝다.
대통합의 논의는 사실 이번 정부가 처음이 아니다. 이승만 정부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명제로 단결을 강조했고, 박정희 정부는 '국민총화(總和)'라는 표현을 썼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말에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통합위원회를 만들어 연 40억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이 기구의 첫 회의에서 송복(연세대 명예교수)이 "법을 준수하지 않는 국민은 사회통합에서 제외된다"고 못박고 "그 인구가 20~25%에 해당한다"고 말해 국민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역대 정부가 주도하는 대통합의 논의는 대개 국민 전체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권이 민심을 거국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유지하려는 책략에 가까웠다. 반대하는 민심을 포용하고 정치에 참여시키려는 조선 정조의 탕평이 아니었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정당 간의 대연정을 표방한 슈뢰더의 결단도 아니었다. 반발하는 민심을 응급조치로 무마하며 약간의 특혜로 생색을 내는 방식으로 탈주하는 국론을 끌어안으려는 '코스프레'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개조론까지 내세우며 '안전한 나라'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 '관피아가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개조는 대통령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그것을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닐 수 있다. 국가의 근간을 바로잡기 위해선 민심의 대통합과 국정 방향에 대한 보편적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는 국민의 것이며 대통령의 권력 또한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100% 대한민국'은 소외된 국민을 모두 끌어안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100%란 숫자는 아마도 "경제와 정치 권력의 상위 1%의 이익이 나머지 99%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관념을 심어주기 위해 부유층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산층과 빈민층을 설득하고 있다"는 스티글리츠 교수의 발언을 의식한 것일지도 모른다. 1%와 99%가 모두 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의미는 멋있어 보일 수는 있으나, 정책의 방향으로 삼기엔 매우 모호하고 불가능에 가까운 범위일 수도 있다. 마틴 루서 킹 목사와는 달리 흑백분리(Segregation)론을 주장했던 맬컴 엑스(1925~65)는 이런 말을 했다. "제 정신을 가진 흑인이라면 백인들이 자기네들의 체면 유지를 위한 통합 이상의 것을 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대통합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진실한 정부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진심을 가지고 나서서 국민을 설득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소신으로 가질 수도 있고, 국력 신장을 위해 일정한 희생을 요구하고 향후 파이를 키우는 전략을 신념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런 점들이 국민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인 만큼, 100%가 아니라 지금은 99%인지 1%인지를 밝히며 그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해나가야 한다. 판단이 바뀌었으면 그 또한 정직하게 국민과 소통해나가야 한다. 공감대의 창출 없이 대통합도 국가개조도 불가능하다.
또한 대통합은 인사의 탕평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선거에서 드러난 것처럼 아직도 한국 정치에는 지역에 기반한 원초적인 갈등이 잠복해있다. 이런 기류를 유지시키는 것은 정부의 인사 방식에도 큰 책임이 있다. 숫자만 따져 호남 몇 명 영남 몇 명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은 더욱 억지스럽다. 다양한 지역의 인재들을 제대로 키워내고 그 재능을 국가의 자산으로 활용하는 정조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
사회대통합을 위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야당에 대한 열린 태도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직접 나서 소통을 하려는 것은 정치를 보완하는 일은 될지언정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독일이 국민의 '혜택'을 깎아내는 혁신을 추구하면서, 반대 당들을 설득했던 그 열정을 기억하라. 여당은 잠정적으로 정치를 직접 맡은 당이며 야당은 그 정치를 감시하며 조언하는 당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면 여야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큰 틀을 찾아낼 수 있다. 정치에서 하나의 방향성을 찾아내고 상호 공인하는 가치를 넓혀가는 일이야 말로 대통합이 가장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민의는 국회 속에 이미 있으며, 정치 속에서 꿈틀거린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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