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지도' 통해 정확히 집 찾는다"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해 떨어졌다. 이제 고마 집으로 가자~"
직장 동료들과 1차…2차…3차까지. 드디어 일시적 기억상실증에 빠진 김 모씨(42세). 친구들과 낯선 곳에서 술을 마시고 기억을 잃었던 김 씨. 다음 날 깨어났을 때는 자신의 집이었다. 술자리까지는 기억에 나는데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기억하려 하면 머리가 깨지는 고통만 스물스물 돌아올 뿐이었다.
이를 두고 과학자들은 '귀소본능'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살던 장소나 둥지 혹은 태어난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오는 생명체의 성질을 말한다.
6시간 동안 인간에 의해 납치당하고 감금됐던 A 벌. A 벌은 어느 날 갑자기 인간에 의해 붙잡히는 참담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자신은 벌집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느닷없이 당한 황당한 사건이었다.
A 벌은 자신이 감금당한 곳에 도착했을 때 비슷한 처지의 벌이 더 있음을 알아챘다. 조직적인 인간의 덫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은 6시간 동안 깜깜한 곳에 가둬놓더니 이윽고 별 일 없다는 듯이 풀어줬다. 풀려 나와 보니 집은 온 데 간 데 없고 여기가 어딘지 A 벌은 당황했다.
납치당하고 약에 취하고 혼자 버려진 벌이라도 그들의 환경을 둘러싼 '정신·심리 지도(Mental Maps)'에 의해 자신의 벌집을 자연스럽게 찾아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귀소본능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번 연구결과는 인간의 기억과 인식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연구팀은 57마리의 벌을 통해 실험을 진행했다. 벌들이 자신의 집으로 가는 루트를 한 번 파악하게 한 뒤에 벌들을 잡아 그들 중 절반은 어두운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가둬놨다. 방향감각을 마비시키고 시간 개념에 방해를 준 것이다. 이는 벌들이 하늘과 태양을 통해 방향감각을 찾는 능력을 없앤 것과 같다.
6시간이 지난 뒤 벌들을 벌집에서 600m 떨어진 지점에 풀어 놓았다. 방향감각을 마비시킨 벌과 그렇지 않은 벌은 처음에는 달라보였다. 방향감각이 마비된 벌들은 이러 저리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황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잠시 뿐. 방향감각이 마비된 벌들은 곧바로 제자리를 찾았다. 정상적인 벌과 함께 똑같은 길을 찾아 거의 같은 시간에 자신의 벌집으로 되돌아왔다. 방향감각이 마비된 36마리의 벌 중 29마리, 정상적인 21마리의 벌 중 18마리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벌들이 태양과 하늘만을 기준으로 방향감각을 찾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른바 인간의 '심리 지도'처럼 공간기억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번 벌들에 대한 연구결과가 인간의 심리지도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봤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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