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좋아하는 선수가 나오면 목청껏 응원하고, 마음에 안 들면 야유를 퍼붓는다.
축구나 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선수가 셋업하는 순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골프대회 현장의 달라진 '관전 풍속도'다. 라이더컵 같은 국가대항전은 아예 대놓고 일방적인 응원전을 펼친다. 그것도 지구촌 최고의 무대인 미국프로골프(PGA)투어가 앞장서고 있다는 게 더욱 놀랍다. 골프 역시 마케팅의 화두가 '쌍방향 소통'으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애덤 스콧(호주)은 실제 지난 26일 미국 텍사스주 콜로니얼골프장에서 열린 크라운플라자 최종일 제이슨 더프너(미국)와의 연장전 당시 자국 선수에 대한 미국인 갤러리의 편파적인 응원을 이겨내야 했다. 불과 며칠 전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스콧에게는 2위와 포인트 차가 적어 우승이 절실했던 시점이었다. 스콧은 다행히 미소로 이를 극복했고, 기어코 우승버디를 솎아내 '넘버 1'의 자리를 튼튼하게 다졌다.
이보다 몇 시간 앞서 잉글랜드 웬트워스골프장에서 끝난 유러피언(EPGA)투어 BMW PGA챔피언십도 비슷했다. 독주하던 토마스 비욘(덴마크)이 막판 자멸해 루크 도널드(잉글랜드)와 세인 로리(아일랜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의 우승 경쟁이 치열해지자 갤러리의 성원은 도널드에게 집중됐다. 같은 영연방 국가 선수지만 갤러리의 선택은 도널드였다는 게 아이러니다.
골프에서는 물론 선수들이 샷을 하는 순간만큼은 조용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무시하는 '해방구'가 있다. 바로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스코츠데일골프장에서 열리는 피닉스오픈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인 미식축구(NFL) 슈퍼볼 결승전과 겹치는 일정이지만 50만명이 넘는 인파를 유치하는, 이른바 골프 마케팅의 '롤모델'이다. 그 동력이 바로 소란(?)이라는 게 재미있다.
일단 16번홀(파3)에 조성된 거대한 스탠드부터 위압적이다. 로마시대 검투장을 연상시킨다 해서 '콜로세움'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올해는 무려 3만명이 운집해 맥주를 마시면서 떠들었다. 선수들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버바 왓슨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리키 반스(이상 미국)는 스케이트보드를 미리 준비해 갤러리에게 나눠주는 등 극진한 대접을 곁들였다.
마스터스의 파3콘테스트는 또 다른 '소통의 장'이다. 본 대회 하루 전 선수들이 아내와 아이들, 또는 여자친구를 캐디로 대동해 축제를 즐기는 동시에 갤러리에게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올해는 잭 니클라우스와 아널드 파머(이상 미국), 게리 플레이어(남아공) 등 '골프전설 3인방'이 같은 조로 등장해 플레이 도중 갤러리와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고, 사인을 해주는 따뜻한 풍경을 연출했다.
몇 년째 지독한 '여고남저(女高男低)'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코리안투어에서도 도입해 볼만한 일이다. 소음을 내고, 카메라를 들이댄다고 무조건 통제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갤러리의 소양은 이미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성숙해질 것이다. 비싼 돈 내고, 멀리 대회장을 찾는 갤러리는 적어도 '골프광(狂)'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갤러리가 즐겁도록 고민하는 것, 바로 이게 국내 프로골프 발전의 지름길이다.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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