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사라진 투수전을 찾습니다

시계아이콘02분 10초 소요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글자크기

[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사라진 투수전을 찾습니다 더스틴 니퍼트[사진=아시아경제 DB]
AD


“스코어보드(전광판)에 영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960, 1970년대 고교·대학·실업 등 아마추어 야구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들이 흔히 했던 말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야구장 스코어보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숫자는 0이었다. 1-0, 2-1, 2-0 등 축구와 같은 스코어가 심심찮게 나왔다. 한국이 처음으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한 1963년의 일이다. 그해 6월 5일 용산 육군구장에서 열린 실업 야구 춘계 리그 마지막 날 경기에서 기업은행은 최관수(작고, 군산상고에 ‘역전의 명수’라는 별칭을 붙게 한 지도자로 활약)의 산발 3안타 완봉 역투에 힘입어 제일은행을 2-0으로 누르고 리그 전적 8승2무2패로 우승했다. 그 무렵 야구팬들은 투수전의 묘미를 종종 즐길 수 있었다.


1회부터 9회까지 18칸 대부분이 0으로 채워지는 경기를 미국에서는 ‘구스 에그(Goose Egg)'라고 부른다. 숫자 0의 행렬이 거위알 같은 동그라미가 이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미국에서도 치열한 투수전이 펼쳐진 시기가 있었기에 이런 용어가 만들어졌을 터.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영의 행진’이라는 아나운서멘트는 듣기가 어려워졌다. 이제는 축구 스코어보다 핸드볼 스코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 프로야구 한화는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대전구장에서 열린 NC와의 3연전에서 9-18, 1-18, 7-15로 졌다. 3경기에서 51점을 내줬다. 홈런 11개를 비롯해 안타 55개를 얻어맞았고 볼넷 18개를 내줬다. 세 차례 경기에서 한화 쪽 전광판 27개 칸 가운데 0이 들어 있지 않은 건 10곳에 불과했다. 야수들이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 그라운드에 서 있었다는 얘기다.

올 시즌을 앞두고 타고투저 현상을 내다본 전문가들이 많긴 했다. 또 시즌 초반이니 타자들이 투수들에게 앞서는 게 일반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1일 현재 팀 평균자책점은 삼성(4.02)과 NC(4.19)를 제외하고 모두 5점대다. 이 정도로 투수들이 일방적으로 타자들에게 몰릴 것을 내다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화는 6점대에 근접한 5.88이다. 자책점에 1~2점 정도를 보탠 게 실점이라고 할 때 한화는 적어도 7점 이상을 뽑아야만 승리를 기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현재 한화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4.9점에 그치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계산이 서지 않는다.’

올 시즌 타자들의 기세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완투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1경기라도 마운드에 오른 9개 구단 투수는 170명. 이 가운데 완투한 이는 두산의 더스틴 니퍼트와 삼성 릭 밴덴헐크 딱 두 명이다. 리그 전체에서 완투가 달랑 두 차례이니 완봉승을 기대하는 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한화는 투수 22명, LG는 23명이 마운드에 올랐다. 다급해진 마운드 사정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사라진 투수전을 찾습니다 릭 밴덴헐크[사진=아시아경제 DB]


최근 20여 년 사이 투수전이 사라진 것은 타자들의 기량이 늘어난 결과만은 아니다. 여러 요인이 깔려 있다. 투수 분업화도 그 가운데 하나다. 대체로 1990년대 초반 투구 수 관리를 기초로 선발~셋업맨~마무리로 이어지는 투수 분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팬들도 투구 수를 세기 시작했다. 완투형 투수는 서서히 사라져 갔고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결과적으로 4-3으로 끝나면서 의미가 다소 희석되긴 했지만 지난달 27일 류현진(LA 다저스)과 조니 쿠에토(신시내티 레즈)는 6회까지 다저스가 1-0으로 앞선 가운데 전형적인 투수전을 펼쳤다. 팬들은 가슴을 졸이며 두 투수의 눈부신 투구 내용에 빠져들었다. 홈런이 어지럽게 날고 연속 안타가 터지지 않아도 야구가 얼마든지 재미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인물이 최동원(작고)과 선동열이다. 두 투수는 1980년대 후반 선발로 3차례 맞대결을 펼쳐 1승1무1패를 기록했다. 승패를 주고받은 2경기(해태 1-0 롯데, 롯데 2-0 해태), 15회 연장 2-2 무승부 등 모두 두 투수의 완투 경기였다. 무승부 경기에서는 최동원이 공 209개, 선동열이 232개를 던졌다. 요즘의 시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선동열은 세 번째이자 무승부 경기를 치른 1987년이 프로 데뷔 이후 세 번째 시즌이었고, 이후 1995년까지 국내 리그에서 8시즌을 더 뛴 뒤 1996년부터 4시즌 동안 일본 리그에서 활약했다.

1일 경기에서도 롯데와 두산은 잠실구장에서 29안타를 주고받으며 19점을 올리는 공방전을 펼쳤다. 두 구단이 함께 전광판에 ‘오리알’을 채워 넣은 건 4회와 9회 뿐이었다. 4경기 합계, 94안타(11홈런) 33사사구 54득점이 쏟아졌다. ‘투수전’이라는 용어가 야구 사전에만 있는 말이 될 것 같은 요즘의 프로야구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