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노오란 리본을 달고,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기도하였지만, 사고 당일 외에는 단 한명의 생환자가 없다. 안타깝게도 노오란 리본의 기적이 나타날 것 같지 않다.
트위터에 처참한 현장이 지금도 우리를 울린다. "지금 배가 90도 기울어져 있어. 거짓말 아니고 죽을지도 몰라. 네 옷 다 챙겨와서 미안해…" 가라앉는 배 안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언니는 동생의 옷가지를 가져온 게 못내 미안했다. 동생의 예쁜 옷이라도 입고 친구들과 사진 찍으면서 즐거운 수학여행을 보내려 했던 가난한 언니의 '유서'였다.
"내가 돈이 없어서 이런 걸 못 사줬어요. 그래서 못 찾을지도 몰라" 실종된 자식에게 유명 브랜드 옷을 사주지 못해 시신을 찾지 못할까 걱정하는 어머니의 회한도 있다. "염을 하러 들어갔더니 열손가락이 모두 해져 있더라구, 얼마나 살려달라고 벽을 긁었으면…"
자식 잃은 아픔에 죽는 날까지 검정 옷만을 입은 오스트리아 엘리자베트 왕비 (1837~1898년)의 이야기는 유럽의 어머니들에게는 눈물겨운 사연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1889년 아들이 죽자 왕비는 검정 옷을 입기 시작하였다. 아름답던 미모는 초췌해졌고, 아들을 잃은 어미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 항상 부채나 양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생기 있던 삶이 완전히 무너졌다. 1898년9월10일, 그녀는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아들을 가슴에 묻고 슬프게 산 세월을 끝냈다. 부귀영화와 권력, 부러울 것 없는 왕실에서, 아름다운 외모와 활달한 성품도, 국민의 열렬한 사랑도, 아들을 잃은 슬픔을 해결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던 그녀지만, 아들에게 못다해준 한(恨)을 검정색 옷으로 푸는 듯 일생을 살았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서 흰색 상복을 착용한 반면 유럽에서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부터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색으로 검정색 옷을 입었다.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보라색, 연보라, 그리고 여름에는 흰색도 사용된 흔적이 있어 획일적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16세기, 카트린느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1519-89)가 남편 앙리 2세가 죽은 후 좋아하던 빨강(crimson) 대신 검정색 옷을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17세기에는 좋은 가문에서는 상복뿐 아니라 잠옷과 실내가운까지 검정색을 입었다. 검정상복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다 알다시피 요즘 우리가 달고 다니는 노란색 리본은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색이다. 감옥살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나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의 색이다. 그 노란색 리본을 이제는 검정색 리본으로 마꿔 달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입히지도 못하고,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다 못해준 엄마는 그저 죄인이다. 미안함이 한(恨)이 되어 가슴이 에이고 억장이 무너질 뿐이다. 노오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바람에 띄우기 시작 할 때만해도, 우린 내 자식들이 돌아오리란 희망이 있었다. 이제는 검은 리본으로 바꾸어 달고, 온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내 자식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 짓쳐 오는 것 같아 두렵기 그지없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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