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는 흥미로운 비공식 슬로건이 있다. 다운타운에서 1969년부터 뮤직 밀레니엄이라는 음반가게를 운영하는 테리 쿠리에(Terry Currier)가 2003년 주창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바로 '포틀랜드를 독특하게 유지하자(Keep Portland Weird)'이다. 쿠리에는 '이상한' '비정상적인' '독특한' 등의 뜻을 가진 'weird'라는 단어에 대해 "우리 지역의 개성, 우리 지역의 비즈니스를 존중하고 아끼자"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원래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사용되던 슬로건을 베낀 것이지만 포틀랜드에 상당히 잘 어울린다.
포틀랜드에 살면서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알게 된 가장 큰 특징은 독립적인 지역 소규모 사업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포틀랜드는 인구 60만명으로 미국에서 28번째 인구밀도를 가진 크지 않은 도시다. 하지만 수제 맥주, 커피, 음식점, 서점 및 지역생산 식료품 가게 등 분야별로 독립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소규모 사업가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전역을 통틀어 두 번째로 크래프트 맥주를 생산하는 독립 점포들이 많으며 이들이 생산하는 맥주의 종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리건주 전체적으로 66개 타운에 165개 맥주 제조업체가 있는데 포틀랜드에만 53개가 위치해 있다. 신맛의 맥주, 각종 과일맛이 나는 맥주, 벨기에 에일 등을 맛볼 수 있으며 매년 맥주축제도 세 개나 열린다.
포틀랜드의 명소인 파월서점은 미국에서 가장 큰 오프라인 서점이다. 대형 체인점이나 온라인 서점에 밀리지 않고 '독립서점'의 대표주자로 건재하다. 다운타운에 있는 본점은 400만권이 넘는 책을 보유하고 있으며, 절판되었거나 희귀한 책들도 이곳에 가면 구할 수 있다. 뮤직밀레니엄은 미 서북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음반가게이며, 특히 대형 체인점 등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디뮤지션들의 희귀 음반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매주 주말이면 포틀랜드 및 다른 도시에서 '파머스 마켓'이 열린다. 중소형 농장을 소유한 농부들은 대형 식료품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장터에 와서 소비자들에게 농산물을 판다. 이곳에 자신이 재배한 농작물을 자랑스럽게 내놓는 농부들로부터 직접 야채와 과일을 살 수 있다. 대형 식료품점에서도 유난히 '우리 고장에서 키운 농산물을 제공함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하는 '로컬(local) 마케팅'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오리건주의 대표 언론인 '오리거니언'은 하이킹 인구, 하이브리드카 소유 인구 등을 포함하는 '독특성 지수(weirdness)'를 만들어 미국 도시를 평가했는데 1위는 캘리포니아주의 샌프란시스코였다. 포틀랜드가 11위를 차지했다. 반대로 가장 평범한(normal) 도시는 유타주의 솔트레이크가 꼽혔다. 단순히 로컬 비즈니스를 육성하자는 차원을 넘어 도시의 문화, 시민들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업그레이드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 개성 있고 멋있는 거리로 손꼽히던 강북의 삼청동 및 인사동 거리, 그리고 강남 가로수길이 대형 자본에 의해 잠식돼 가는 모습을 생각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심지어 전주 한옥마을, 안동 하회마을 등 가장 고유하고 전통에 충실해야 할 곳에서조차 관광객이 늘어가면서 상업성과 편의성에 의해 훼손돼 가는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는 비록 국토는 작지만 역사가 깊고 전통이 유구해 지역마다 가지는 개성이 더욱 뚜렷할 수 있다. 6ㆍ4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새로 선출되는 단체장들은 독립적이며 개성있는 작은 사업체들이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번창하고, 그래서 그 지방을 고유한 곳으로 만드는 선순환을 포틀랜드에서 배워가기를 바란다.
이은형 미조지 폭스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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