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엔저에 기반을 둔 일본 정부의 '아베노믹스'가 시작됐을 때 우리 기업의 미래는 암담해보였다. 하지만 일본의 돈 살포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3월까지 25개월 연속 흑자를 냈고, 월 기준 사상 최대 기록을 잇따라 갈아치우고 있다.
반면 2012년 말부터 시작된 일본의 엔저 정책은 '이웃나라를 거지로 만드는 정책'이라는 비판 속에서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있다. 일본 수출기업들 사이에서 이른바 '엔저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평가 때문이다.
일본은 3월 1164억엔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두 달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갔지만 흑자폭은 예상치의 절반을 밑돈다. 2013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통계작성 이래 가장 적었다. 경상수지 흑자 행진 속에 급락하는 원·달러 환율을 걱정하고 있는 우리와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중앙은행의 발권력까지 동원한 일본에서는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한국은행은 13일 '엔저의 수출 파급효과 제약요인 분석' 보고서를 통해 더딘 세계경기 회복세와 수출가격 인하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불안감, 강력한 경쟁자들의 등장 등을 주 원인으로 꼽았다.
조사국 국제경제부 국제종합팀 곽준희 조사역은 먼저 "세계성장률이 위기 이전 수준을 밑돌면서 일본의 주력 수출품인 기계와 기기류에 대한 세계 시장의 수요가 과거보다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곽 조사역은 또 "일본 기업들이 수출가격 인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역시 한 가지 요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엔고 아래서 이윤이 크게 줄어드는 경험을 했던 일본 기업들이 엔저 속에서도 가격을 유지해 수익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엔저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도 이런 태도를 부추긴다"고 설명했다.
중국 등 신흥국의 빠른 추격 역시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곽 조사역은 더불어 세계 시장의 변화에 따른 대응에 뒤처졌다는 점 또한 일본 기업들이 엔저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곽 조사역은 하지만 일본의 저력을 고려하면 안심하긴 이르다고 경계했다. 그는 "앞으로 엔화 절하폭이 보다 커진다면, 일본 기업들이 그동안 쌓아둔 수익을 바탕으로 수출 가격을 낮추고, 투자 확대를 통해 신제품 개발 등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리 기업들의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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