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원ㆍ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수출대기업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고 정부가 나섰는데 그렇지 않다. 중소수출기업이 문제다. 대기업은 견딜만 하다. 현지공장 건설과 부품조달, 결제통화 다변화로 환율절상을 흡수할 수 있다. 정부 설명이다. 속도가 문제란다. 원화절상의 방향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수출과 내수의 균형이란 정책목표가 원화절상을 용인한다.
전통적으로 경제정책은 대기업 수출지원이 목적이었다. 환율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과 양극화을 초래했다. 경제력 집중이란 폐해와 수많은 그림자들을 남겨놨다. 때문에 수출과 내수의 균형이란 시각으로 환율을 바라보는 자체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단기적인 목표를 위해 환율을 바라본다는 타성은 변함이 없다. 한 걸음 더나가야 한다. 환율을 일시적인 정책수단으로 사용하다 큰 낭패를 본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1997년 봄, 외환위기가 찾아오기 직전. 김영삼 정권은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을 위해 원화절상을 유도했다. 1달러당 원화가 760원까지 내려갔다. 싸게 꾼 달러로 은행, 종금, 기업, 소비자 모두 흥청망청했다. 당시 재경원은 원화절상은 경쟁력 강화를 통해 대처한다며 경쟁력강화대책을 빈번이 발표했다. 고평가된 원화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고 채권자들의 자금회수가 본격화 되자 바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불과 몇 달만이다. 기업들의 과다부채가 근본 문제였다. 환율을 가지고 장난친 것도 외환위기가 일어난 주요 원인중 하나다.
수출지원을 위한 환율정책은 박정희 대통령에서 시작됐지만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다. 참여정부 초기인 2003~2004년의 사례는 아픈 실례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싼 원화를 유지하기 위해 '역외선물환시장'에 개입한다. 1조80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본다. 또 손해를 줄이려고 현물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해 5조원 이상의 환차손을 입는다. 2004년 외국환평형기금에서 10조2205억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입었다. 개방경제에서 무리한 환율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는 지를 잘 보여준다. 시장에서 대장은 정부가 아니라 실력있는 금융산업이다.
수출주도 정책이 남긴 큰 폐해가 금융산업의 경쟁력 약화다. 나가기만 하면 판판이 깨진다. 한국투자공사의 메릴린치 지분투자, 국내 금융기관들의 브라칠 채권투자가 그렇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수출로 벌기만 할 때가 아니라 번 돈을 외국에 저금하고 투자해야 할 때다. 해외자산도 늘어나면서 환율 걱정도 줄어든다. 많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나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나가지 않고 들어오기만 하는 게 문제다.
금융산업도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할 때다. 해외 진출과 해외자산 투자를 통해 환율의 장기균형을 찾고 고령화에 대비할 방안을 마련할 때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자세가 필요하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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