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세월호 침몰]기약없는 기다림 … 팽목항의 어떤 하루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2분 15초

[진도=유제훈 기자]

[세월호 침몰]기약없는 기다림 … 팽목항의 어떤 하루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지 아흐레째인 24일 진도 팽목항 앞 수평선 너머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AD



"다시 한 번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160번…"

24일 오전 10시께. 아침부터 시신 4구가 인양됐다는 소식에 고요했던 팽목항 가족지원실 앞은 부산스러워졌다. 회색·검정색 트레이닝 복을 갖춰 입은 실종자 가족들은 하나 둘 씩 게시판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양된 시신의 인상착의가 하나 둘 씩 공개되자 가족들은 쓸쓸히 되돌아가야 했다. 실종된 A군의 어머니도 "우리 ○○이는 아직 인가봐… 여자애들만 나왔네"라며 다시 대기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AM 10:00 "우리 ○○이는 아직인가봐…"

이런 모습은 새로운 시신이 발표될 때마다 반복됐다. "다시 한 번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멘트가 나올 때마다 실종자 가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신의 인상착의가 기록된 게시판 주위를 서성였다. 또 다른 실종자 어머니는 "나갈 때 흰티랑 회색 바지를 입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러나 한 시도 잊지 못하던 아들·딸을 발견한 가족들은 어김없이 오열을 토해냈다. B양의 어머니 역시 '미상'으로 기록된 한 여학생의 인상 착의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우리 ○○이가 여기 있어… 어떡해, 어떡해!"


한편 이곳에 남아 지지부진한 구조작업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한 남성은 "가족인데 브리핑 내용을 TV를 통해서 보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면서 실무자에게 분통을 터트렸다. 한 실종자 어머니도 감정이 복받힌 듯 "애들을 빨리 구해내야지, 지금 그런 말 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냐"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보다못한 실종자 가족 20여명은 지지부진한 구조작업 상황을 직접 보겠다며 두 척의 배에 나눠타고 사고해역으로 향했다.


◆ AM 12:00 "내 새끼 찾으려면 잘 먹어야 돼"


12시쯤이 되자 팽목항은 다시 분주해졌다. 1km남짓 되는 항구 곳곳에 전국에서 몰려든 기업, 종교단체, 구호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이 일제히 점심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실종자의 동생 쯤 되는 것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은 기업에서 후원한 피자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들을 바다에 둔 부모들은 식사대신 뉴스특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팽목항에 마련된 간이 식당에도 실종자 가족보다는 자원봉사자나 관계자들이 주로 눈에 띄였다. 이 와중에도 한 실종 학생의 어머니는 "내 새끼 찾으려면 나부터 잘 먹어야 돼"라며 수저를 뜨기 시작했다.


한편 일부 학부모들은 벌써 아흐레째 되어가는 강행군에 몸이 상한 듯 보였다. 입술마다 갈라져 핏자국이 선명하거나, 입 주위로 궤양이 생긴 학부모들을 팽목항 이곳저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이들은 간간히 간이진료소나 물리치료소를 찾아 지친 몸을 뉘이거나 치료를 받기도 했다.


◆ AM 16:00 벌써 아흐레, 구조 당국·언론은 뭘 했나 … 분노한 가족들


오후부터 실종자 숫자는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렇듯 수색과정에 진척이 없자 아흐레를 보낸 가족들은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마침 배 두 척에 나눠 타고 사고 해역을 참관한 학부모들이 도착해 "750명을 투입했다더니 정작 물 안에 있는 잠수사는 두 명 뿐이더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언론 역시 신뢰하지 않았다. 수첩을 가지고 모인 기자들에게 한 실종자 학부모는 "니들이 기자야? 니들이 기자냐고. 부끄럽지 않니? 그 직업을 가졌을 때 그렇게 좋았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5시께 이주영 해수부장관·김석균 해경청장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인 기자들에게도 학부모들은 "앞을 막지 마라. 부끄럽지 않느냐"며 질타했다.


5시 30분께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팽목항에 도착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가족들은 이 장관과 김 청장을 에워싸고 농성을 벌이면서 750여명이 투입됐다는 당국의 발표와 달리 적은 인원이 구조·수색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 대한 해명과 민간잠수사·다이빙벨 투입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작은 몸싸움과 함께 한 때 격한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다.


◆ AM 23:00 "정확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것 뿐"


농성이 8시간 동안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자연스레 진정되고 있었다. 오후 9시 30분께 유족들이 요구하던 민간잠수사·다이빙벨 투입에 대해 이 장관이 수용의사를 밝히고 무선으로 투입을 명령하면서 대화의 단초가 마련됐다. 특히 10시쯤에는 실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잠수사가 팽목항을 방문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과 수색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 1시 10분이 되자 자연스레 자리는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한 여성은 마이크로 "새벽 3시부터 구조작업이 재개되니 가실 분은 보내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청장은 현장 지휘를 위해 자리를 떠났고, 이 장관은 신속하고 정확한 구조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팽목항에 남게 됐다. 자리가 파할 무렵 한 남성은 이 장관을 끌어안고 모두가 슬픈 이 상황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오열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