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란 신비하기 짝이 없습니다. 인류가 지닌 보편적인 입맛이 있을 것이고, 무리생활을 하면서 정착된 입맛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개인적인 경험과 선택들이 만들어낸 지극히 개인적인 입맛도 존재합니다. 입맛 속에 들어있는 차이와 닮음, 그 경계와 지도, 그리고 그 특징들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훌륭한 분석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자신의 입맛이라고 자신이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이런 입맛이 내게 스며들었는지, 태생적인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배운 것인지, 주위에 있었던 누군가가 넣어준 것인지, 자세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개 고릿하며 콤콤하며 비릿하며 맵싸한 것이 많습니다. 조개나 소라나 게의 비릿한 맛, 곱창의 고릿한 맛, 콩잎이나 된장 따위의 콤콤한 맛, 고추장이 버무려진 매콤한 맛들이 모두 내 입맛을 돋웁니다. 멸치젓갈의 짜고 비릿한 맛이나 경상도식 매운탕의 마늘, 재피가 들어간 알싸한 맛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손맛 때문일, 삶은 부추를 간장에 살짝 버무린 '꿀할아버지(우리집에선 이렇게 불렀습니다)'도 좋아하고 콩잎을 된장 속에 묵혔다가 까맣게 되면 내놓는 짠콩잎을 짖어먹는 것도 몹시 좋아했습니다.
감자나 수제비, 칼국수, 옥수수 따위의 맛도 좋아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어린 날의 궁한 먹거리 가운데 맛보았던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낙지도 무척 좋아하게 되었는데 무교동에 몰려있던 낙지집에 동료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서 매번 호주머니를 털어 '쐈던' 기억도 납니다. 이번 수동면에서 간밤의 술로 속이 까끌해진 아침, 양평해장국집에서 우곱탕이라는 메뉴를 선택해 먹었습니다. 독특한 맛은 아니었지만 곱창이 부드러워 금방 입안이 행복해졌습니다.
낙지나 조갯살처럼 탱글탱글하고 쫄깃쫄깃한 식감을 좋아하는 것은, 치아 부근에서 생겨나는 즐거움일 것입니다. 이런 걸 좋아하려면 대개 이가 탄탄하여 씹는 일이 몸의 세밀한 근육들을 미세하게 긴장시키는 맛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입맛은 아직 그리 늙지 않았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쿰쿰 고릿한 맛은 아무래도 창자와 항문 주변에서 풍기는 냄새를 닮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혀나 식도, 혹은 위에서 즐거워지는 음식이 아니라, 한참 내려간 뒤에 내장 이후부터 풍기는 냄새가 스며든 것을 좋아하는 이 식감은 아무래도 무엇인가 상징성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아로 있을 때의 경험이라든가 혹은 그때의 느낌이 간직되었다가 입맛으로 선택된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묵은 태도나 사람에 대한 열광적인 애호도 이 고릿하고 콤콤한 입맛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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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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