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통일부가 냉가슴을 앓고 있다.이 달 초에 보고한 거대 통일관련 구상이 박근혜 대통령의 구상과 많이 겹쳐지만 말도 못한채 끙끙 앓고 있다.
박대통령은 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문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남북통일에 대비하는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당일 통일부는 뒤늦게 ‘통일준비위’ 구상을 알았다.
이후 준비위의 역할과 기능이 통일부와 중첩된다거나 옥상옥 기구라는 ‘전문가들’의 언급이 줄을 이었지만 통일부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7일 “통일부는 통일 정책의 주무부처이고 앞으로 준비위도 통일부와 협의해서 할 것”이라면서 "대통령의 담화문을 자세히 읽어보라"고 당부했다.세간의 평가는 ‘기우’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이곳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고 남북 간의 대화와 민간교류의 폭을 넓혀갈 것”이라면서 “외교·안보, 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과시민단체 등 각계 각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 국민의 통일 논의를 수렴하고, 구체적인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 담론을 위한 장(場)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통일부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통일부는 이달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비슷한 내용을 밝혔다. ‘통일지성 원탁회의’가 그것이다. 원탁회의는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통일비전과 통일담론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역사·철학·문화·정치·경제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지성들의 의견을 모아 통일비전과 담론을 구체화하는 기구다. 대통령 구상과 다르지 않다. 이러니 난처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큰 그림을 그리겠다고 보고했는데 대통령 입에서 준비위 구상이 나왔으니 말도 못한다.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통일준비위 신설에 따른 통일부 역할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기능상 중복되거나 상충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답했다.
아직까지 청와대는 아직까지 통일준비위가 무슨 기능과 역할을 할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그렇더라도 통일부의 업무계획 수정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통일부가 ‘청와대 독주’로 정책 수립 부처가 아니라 집행부서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도 통일부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가슴앓이만 할 뿐이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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