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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읽다]'단풍 드는 날'…소통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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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시대…지식전달만으로는 과학 발전 없어

[과학을 읽다]'단풍 드는 날'…소통의 과학 ▲서울 남산 북측 순환로에 물든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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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며칠 전 고등과학원이 보도 자료를 보내왔다. '2014 포스코 청암과학상, 고등과학원 김범식 교수 선정'이란 제목의 자료였다. 주된 내용은 "김범식 교수는 공간의 대수기하학적 불변량과 사교기하학적 불변량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설명하는 Quasi-map 불변량들과 이들의 벽횡단 공식을 발견하였으며, 현대 수학의 중요한 연구대상 중 하나인 거울대칭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수학자다"라는 것이었다.

이어 참고자료에는 "거울대칭 이론은 쌍대 대칭성(duality) 중의 하나이다. 수학과 초끈 이론의 한 분야로서, 지금도 이 두 학문 간에 아이디어들을 주고받으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언론매체에서 과학 담당기자로 일하는 것은 축복이자 창조적(?) 고통에 휩싸이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고등과학원에서 보내 온 자료에는 '대수기하학' 'Quasi-map' '거울대칭' '쌍대 대칭성' '초끈 이론' 등 낯선 용어들의 선물 꾸러미였다. 찬찬히 읽고 또 읽어봐도 낯선 선물 보따리는 머리에 압력만 가중시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고개를 떨구는 곳으로 이어지고 만다.

고등과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거울대칭에 대해 알고 싶다"고 긴급 메시지를 전했다. 고등과학원 측은 거울대칭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교수를 연결해 줬다. 전화 연결된 교수도 처음에는 "이거 어떻게 설명 드려야 할 지…"라며 한참을 머뭇거렸다. 전문가와 전문가 사이에는 그들만이 쓰는 용어로 쉽게 소통이 되겠지만 수학계의 전문용어를 기자(일반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이다.


이쪽과 저쪽 전화기 사이에 긴 침묵이 이어진 뒤 교수는 "두 가지 이론이 서로 동치, 즉 두 이론이 서로 거울을 보고 있는 것처럼 존재할 때 한 쪽에서 계산이 어려울 때 동치 된 다른 이론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A와 B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동치 됐을 때 A에서 풀리지 않는 실마리를 거울이라는 '문지방 경계'를 넘어 B를 통해 해결점을 찾는다는 설명이었다.


쉽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 이 정도였다. 이론의 윤곽은 이해하겠다. 그러나 정확히 거울대칭이 앞으로 어떤 곳에 접목되는 지에 대해서 100%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 뿐만 아니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매일매일 내놓는 과학관련 보도 자료에는 전문용어가 한 문장에 하나씩 들어있는 게 대부분이다.


어려운 전문용어에 대한 설명은 따로 첨부돼 있지만 그 설명 자료가 또 다시 전문용어로 가득 채워져 있어 '이해의 난해한 산'들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야말로 '산 넘고 산'이다. 어떤 때는 그런 자료를 대할 때 마다 "우리(기자들)를 시험에 들게 하려 함이니라"는 자조 섞인 말을 되뇌어 보기도 한다.


과학관련 기사를 읽는 독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기사들에 대한 포털 댓글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인가" "무슨 기사를 이렇게 어렵게 쓰느냐"는 반응이 많다. 심지어 한 네티즌이 "저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다른 님들은 이해가 되세요?"라는 물음에 또 다른 네티즌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기자도 정확히 알고 쓴 기사가 아닐 겁니다"는 답글이 달린다. 독자들의 그런 모습을 마주칠 때마다 스스로 '뜨끔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과학은 세상을 바꾸는데 보도 자료는 물론이고 과학담당기자가 쓰는 기사는 '어렵고 소통되지 않고 삭막한' 느낌을 많이 던져주니 이게 재미있을 리가 없다. 이제 과학도 변해야 한다. 과학이 국민들에게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기만 하는 과학에서 이젠 읽어야 하는 시대에 와 있다. 수학 공식과 과학적 지식전달 체계만으로는 21세기 무한한 상상력이 지배하는 시대에 버텨내기 쉽지 않다. 과학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때 삶은 풍요롭고 따뜻한 세상으로 바뀌지 않을까.


최근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김소연 시인의 '시옷의 세계'라는 책을 빌려 읽고 있다. 부제는 '조금 다른 시선, 조금 다른 생활'이다. 여기에 과학과 문학에 대한 접근법을 다루는 부분이 있어 시선을 잡아끌었다. '단풍이 드는 이유'에 대해 시인은 어떻게 접근했을까.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도종환의 '단풍 드는 날' 중에서>


이 시는 과학적 지식을 100% 반영하고 있다. 읽는 데 무리가 없는 것은 물론 감정의 느낌이 마음 속으로 다가온다. 초록의 나뭇잎들은 가을이 다가오면 스스로를 붉게 물들인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아!' '와아!'라며 탄성을 자아낸다. 나무가 가장 아름답게 불타고 있는 모습에 감탄을 그칠 줄 모른다. 이런 나무의 절정에는 과학적 사실이 숨어 있다.


나무는 겨울을 앞두고 잎을 버릴 계획을 서두른다. 잎을 다 버려야 아주 작은 에너지만으로도 건조하고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잎을 버리기 위해 나무는 잎자루에 떨켜(낙엽이 질 무렵 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곳에 생기는 특수한 세포층)를 스스로 만든다. 떨켜는 잎이 광합성을 통해 만든 탄수화물과 아미노산을 줄기를 통해 이동하는 것을 막는다. 그럴 때 나뭇잎에 축적된 오도 가도 못 하는 영양분이 색소변화를 일으키고 낙엽을 물들이는 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였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A도 아니고 B도 아닌 경계의 영역을 '문지방 영역'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시인은 미셀 슈나이더가 쓴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라는 전기문에서 이런 문장을 인용한다.


"음악은 붙들려 있는 듯싶다가 다시 떠나는 무엇이다. 지속되는 것과 흘러가는 것 사이를 잇는 가느다란 줄. 달아나 버리는 것. 소멸되는 빛 속에 간직된 불안정한 동요."


붙들려 있다 vs 떠나다, 지속되다 vs 흘러가다, 간직되다 vs 소멸되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동시에 서로 붙어 있기도 하다. '문지방 영역'이란 매개체로 'A vs B'의 영역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과학과 문학에도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식만을 전달하는 과학은 이제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삶으로 읽을 수 있는 과학이 필요하다. 과학은 세상을 바꾸는 기술을 만들지만 그 기술을 통해 삶을 붙들고, 지속시키고, 간직하는 이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 씨앗을 뿌릴 때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그리고 이제는 과학을 읽을 때이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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