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승미 기자]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미국의 보수와 진보를 상징하는 양대 연구기관 헤리티지재단과 브루킹스연구소를 합한 '상의판 싱크탱크'를 선보인다. 이는 박 회장이 취임 이후 고민해온 경제단체 특유의 보수색 지우기의 첫 실험이다.
대한상의는 13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서울상의회관에서 ▲경제 ▲기업정책·규제 ▲노동 ▲환경 ▲조세·재정 ▲금융 ▲무역·FTA 등 7개 분야, 40인으로 구성한 '정책자문단' 발대식을 가졌다. 박 회장은 이 정책자문단을 직속기구로 둔다. 자신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에서다.
박 회장은 이 자문단을 통해 대기업 지배구조, 통상임금, 제왕형 CEO, 연공서열주의 등 대기업들의 손밑 가시부터 뇌관 까지 모두 다룬다. 다른 경제단체 연구소들처럼 재벌이나 대기업 입맛에 맞는 달콤한 주제만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학자들로 '상의판 싱크탱크'를 구성해 엄중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목소리를 담아내겠다는 것이 소통의 달인 박 회장의 의중이다. 이를 위해 박 회장은 미국의 보수 두뇌집단인 헤리티지재단과 진보성향의 사회과학 연구단체인 브루킹스를 벤치마킹했다는 후문이다.
실제 자문위원 성향을 보면 보수, 중도, 진보 인사들이 모두 참여했다. 보수 일색인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로써는 이례적인 접근이다. 특히 환경, 노동, 대기업 지배구조 등 각 분야 학자들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환경 분야에서는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에서 경제정책을 주도했던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홍 교수는 환경ㆍ에너지 분야 전문가로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한 중도진보 성향의 학자로 알려져 있다.
노동 정책 분야에서는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합류했다. 이 교수는 진보 성향의 학자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정권에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노사 합의와 노동 관련 법안 제정에 관여한 노동문제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이 교수는 특히 대기업의 최대 노동현안 과제인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혜안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기업 지배구조 연구분야에서 손꼽히는 진보성향의 석학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참여했다. 순환출자제도를 강하게 반대해온 박 교수가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대표적인 보수파로는 송의영 서강대 교수, 조동철 KDI연구위원, 정인교 인하대 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박 회장은 이들 보수, 중도, 진보 성향의 학자들을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할 만큼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이는 좌우 모두를 섭렵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자문단을 통해 깊이 있는 식견을 담아 제대로 된 경제계 의견을 내야한다는 그의 경제단체론에서 비롯됐다.
박 회장은 이날 출범식에서 "기업과 기업인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옳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며 "사회적으로 동일한 문제를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각기 다른 해결방안들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대변해서는 정부와 국회,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이에 따라 매 분기 자문위원 40명이 참석하는 전체회의를 갖고 상시적인 협의 체제를 갖출 방침이다. 자문단은 그 첫번째 작업으로 올 초 박근혜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밝힌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대한 재계 건의 과제 100여건을 검증한다. 앞서 상의는 지난 한달여간 전국상의와 회원기업을 통해 발굴한 건의과제 100여건를 자문단 회의에 회부했다. 자문단은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17일 청와대, 정부, 국회 등에 실천 과제를 제출할 예정이다.
자문단 멤버인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그간 재계가 복잡한 정책이슈를 기업의 편익을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아쉬웠다"며 "기업의 위시 리스트(Wish list) 제시에 머물지 말고 공정경쟁이나 기업혁신을 위한 근본개선방안을 내놓아야 여론의 호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승미 기자 ask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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