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떼 앉은 곳 모두 공포지역…방역시스템 아예 뚫린 셈
[세종=아시아경제 정종오·이경호·이윤재 기자] 조류인플루엔자(AI) 발병지 인근 저수지에서 폐사한 야생오리가 AI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방역 당국과 축산 농가들에 비상이 걸렸다.
AI에 대해 내성이 강한 가창오리가 AI로 인해 떼죽음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가창오리떼의 비행경로 내의 모든 축산농가가 위험권역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전북 부안 줄포만, 동림저수지이고 멀게는 전남 해남 고천암호, 창원 주남저수지 근처가 위험지역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일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수거한 야생철새 폐사체에 대한 검사 결과 AI(H5N8형)인 것으로 확진됐다"고 밝혔다. 다만 고병원성 여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북 고창과 부안에서 확진된 H5N8형과 같은 것이어서 앞으로 AI가 확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환경부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국내에 매년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지만 위치 추적기 부착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겨울철새인 가창오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이동하는지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AI로 확진된 동림저수지의 가창오리에 대한 역학조사도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고병원성 AI 때문에 철새가 떼죽음을 당한 적은 없다. 2008년과 2010년, 국내에서 야생 철새가 고병원성 AI에 감염돼 시차를 두고 10여마리가 죽은 적이 있지만, 이는 면역이 약한 일부 철새의 특이 사례로 분석됐다. 2005년에도 3만마리의 가창오리가 죽은 적이 있는데 당시는 AI가 아니라 가금 콜레라라는 세균성 질병이 원인이었다.
AI확산 여부는 전남북과 광주에서의 추가의심신고와 이들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의심신고에 달려있다. AI의 잠복기는 길게는 21일까지 지속되는 것을 고려하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과거 사례를 보면 고병원성 AI는 발생 이후 짧게는 42일(2008년), 길게는 139일(2010∼2011년)간 지속했다.
일단 지난 18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접수된 3건 외에 추가 감염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상태다. AI가 설 이전까지 진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수천만명의 대이동으로 인해 AI가 무차별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날 농식품부의 긴급 대책회의 회의 결과에 따라서는 전남북과 광주를 대상으로 24일 24시까지 내려진 일시이동중지 명령이 연장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방역당국은 AI확산의 분수령을 이번 주로 보고 있다. 지난 18일 최초 발생 이후 3~4일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와 비교해서 상황을 예단하기 어려워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날과 21일까지 일시이동중지명령이 발령된 상태이고 원래는 신고들이 많이 들어와야 되는데 현 상황으로 봤을 때는 신고가 많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면서 "최소한 1주일 이상은 지나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발생하면 정부는 방역체계를 가동한다. AI가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방역본부를 꾸리고 검역과 소독을 실시한다. 이는 AI가 발생한 이후 대처하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이런 현재의 AI 방역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AI가 발병한 뒤 방역체계를 가동하는 시스템은 고병원성으로 강력해지는 AI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철새들의 이동이 잦은 곳이어서 앞으로 철새에 대한 역학조사는 물론 이동 경로 등 사전에 철저한 모니터링이 절실하다.
가창오리가 떼죽음을 당하자 환경부는 전국의 주요 철새도래지 22군데에 대한 예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22군데 중 10곳은 과거에 AI 양성반응이 나타난 곳이다. 22군데 철새도래지는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어 이번 가창오리에서 보듯 철새들이 옮기는 고병원성 AI에서 우리나라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철새들의 이동은 국가와 국가는 물론 대륙과 대륙을 오가는데 아직 역학조사는 물론 철새들의 질병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환경부는 올해 국립야생동물보건연구원 설립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고병원성으로 강력해지고 있는 AI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장기 전략이 필요하고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이윤재 기자 gal-ru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