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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에게 2월 소치는…'키스앤굿바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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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손애성 객원기자]"스케이트화를 신은 지 13년. 누군가는 '이제 피겨계에서는 환갑이 됐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2010년 벤쿠버올림픽 직전에 발간된 자서전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 나오는 문장이다. 벌써 4년 전 얘기다.


17년 차 스케이터 김연아(24)는 오늘도 하루에 70차례 점프를 한다. 매일 근육이 터질 듯한 고통 속에 빙판 안팎에서 이어지는 훈련을 소화한다. 국가대표 맏언니지만 운동의 강도는 10대 후배들과 다르지 않다. 소치올림픽 개막이 다가올수록 스케이트 날에서 불꽃이 튄다.

전 세계 피겨 팬들이 소치올림픽을 고대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김연아가 카타리나 비트(49ㆍ독일) 이후 26년 만에 여자 싱글에서 2연속 우승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김연아가 은반을 날아오르는 순간은 여왕과의 작별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소치는 김연아의 현역 마지막 무대다. 그녀의 팬들은 4년 전 기대와 설렘으로 올림픽을 맞았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라야 한다. 여왕의 아름다운 퇴위를 축하하고 응원하기 위하여 그들에게도 용기가 필요하다.

미국프로농구(NBA)의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51ㆍ미국)이 코트를 떠날 때 미국인들은 고백했다. "당신과 한 시대를 살아 행복했노라"고. 김연아를 떠나보내는 대한민국, 아니 세계 피겨 팬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으리라.


◇ 특별한 재능과의 이별


여왕의 퇴진은 그저 훌륭한 선수를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다. 모두를 압도하는 탁월한 재능, 특별한 개성과의 이별이다.


어린 시절 김연아를 발굴한 류종현 코치(신혜숙 코치와 현 공동 코칭스태프)는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한국의 피겨가 걸음마 단계였지만 (김)연아는 세계적 선수가 되리라 직감했다"고 기억했다. 류 코치가 먼저 선수로 뛸 것을 권유 한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김연아는 특별한 길을 걸었다. 카타리나 비트가 피겨를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고, 중국계 미국인 미셸 콴(34)이 피겨의 무대를 세계로 넓혔다면, 김연아는 피겨를 예술의 추원으로 끌어올렸다. 비슷한 기술과 안무에 피겨 팬들이 식상함을 느끼기 시작한 무렵, 김연아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김연아는 2006~2007시즌 첫 시니어(성인) 무대에서 '록산느의 탱고'로 피겨계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탱고는 10대 소녀가 소화하기에 쉽지 않은 장르다. 그러나 김연아는 자신만만했다. 시니어로 데뷔하자마자 그랑프리 파이널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미국 NBC 중계진은 "16세 소녀의 연기라고 믿기 어렵다"고 놀라워했다.


한국인들은 대표적인 선진국 스포츠 피겨에서 선진국 팬들이 사랑하는 스타를 배출한 데 자부심을 느꼈다. 축구와 야구, 농구 등의 단체 스포츠와 권투 같은 격투기를 즐겨보던 한국 스포츠 팬들의 뜨거운 가슴은 '관전'이 아닌 '감상'을 통해 다듬어졌다.


◇ 특별한 라이벌?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24ㆍ일본)와의 관계로 인하여 김연아는 더욱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뛰어난 경기력을 자랑하는 두 선수의 라이벌 구도 자체도 관심을 끌었지만, 피곤할 수도 있는 관계를 발전을 위한 에너지로 전환했다는 데 김연아의 남다른 면이 있다.


아사다는 주니어 시절부터 '트리플 악셀(3바퀴 반 회전 점프)'을 뛰며 피겨 천재로 불렸다. 김연아는 아사다를 보며 "왜 하필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아사다의 테크닉에 휘둘리지는 않았다. 아사다는 '좋은 자극제'였을 뿐이다. 이 점이 김연아를 의식한 나머지 경기력과 감정에 기복이 심해진 아사다와 달랐다.


김연아는 장점을 극대화한 스케이팅을 했다. 같은 동작도 김연아가 하면 특별해졌다. 점프를 하기 위해 링크를 길게 가로지를 땐 얼음 지치는 소리가 경기장 가득 울려 퍼졌다. 힘찬 스케이팅은 높고 빠른 점프로 이어졌다. 눈앞에서 김연아 점프를 지켜본 심판(judge)은 높은 가산점(수행점수ㆍGOE)을 줄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음악 해석 능력은 탁월함을 더했다. 김연아는 2012~2013시즌 '레미제라블'을 연기하기 위해 같은 제목의 뮤지컬을 200번 넘게 보면서 연구했다. 음악과 안무에 대한 탁월한 해석은 피겨를 처음 보는 이들마저 김연아의 무대에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김연아가 여왕이 되기 위해 '트리플 악셀'이 꼭 필요하지는 않았다.


미국 시카코 트리뷴은 최근 김연아를 '한국 스포츠의 퍼스트 레이디'라고 표현했다. 이 매체는 "'아이스 퀸'의 스완송(백조의 노래)"을 기대했다. 백조의 노래는 죽음을 예고한다. 그러나 김연아의 마지막 비상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섬광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김연아의 메달 색깔이 어떻든, 그의 업적과 우리에게 준 기쁨은 영원하다.


손애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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