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62%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지난해 12월 칠레 대통령에 당선된 미첼 바첼레트(62)는 칠레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이다.
그는 남성우월주의가 강한 칠레에서 2006∼2010년 첫 여성 대통령으로 집권해 민주주의 발전과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일궈내고 연금체계 개혁과 의료제도 확대에 성공했다. 퇴임 당시 80%가 넘은 지지율은 그를 결국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았다.
바첼레트는 오는 3월 새 정부를 공식 출범시킨다. 그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 이어 2018년까지 4년 동안 칠레 국정을 책임지게 된다. 그는 취임 후 대학 무상교육 확대 등 복지제도 개선, 조세제도 개혁, 개헌 같은 현안을 강력히 밀어부칠 예정이다.
칠레 국민은 바첼레트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성장과 빈부격차 해소에 매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랜 군부 독재로 상처 받은 국민의 마음을 다독여달라는 것이다.
바첼레트의 정치 이력은 화려하다. 2000년 보건장관, 2002∼2004년 칠레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 2006~2010년 제34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퇴임 후 2010년 9월부터 유엔여성기구 총재로 활동하다 이번 제36대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의사이자 아동ㆍ공공보건 분야 전문가로, 군사학을 공부한 국방 전문가로 활동한 그의 풍부한 경험은 정치활동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바첼레트는 화려한 정치인생을 전개하기까지 치명적인 약점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힘겨운 싸움도 치렀다. 두 차례 이혼으로 세 자녀를 혼자 키운 그의 사생활은 이혼에 대해 보수적인 칠레에서 대선 때마다 주된 표적이 됐다.
바첼레트가 처음 대선에 출마했을 때 가장 많이 따라 붙은 수식어가 '싱글맘', '이혼녀'다. 당시 바첼레트는 아예 자기가 "칠레인들이 죄로 여기는 모든 요소를 갖고 있다"며 스스로 이혼녀라고 표현했다. 그는 당당하게 정치인과 어머니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첼레트의 굴곡진 인생사는 줄곧 화제가 됐다. 1951년 산티아고에서 공군 장교의 딸로 태어난 그는 1970년 칠레 대학 의학부에 입학해 소아과를 전공했다. 그러나 1973년 군부 쿠데타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버지는 반역 혐의까지 쓰고 체포돼 고문으로 사망했다. 이때 바첼레트도 어머니와 함께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다.
그는 칠레에서 추방돼 호주ㆍ독일 등지를 떠돌았다. 1979년 칠레로 돌아온 그는 군사정권 아래서 피해 입은 인사의 자녀들을 지원하면서 17년 동안 지속된 군사정권에 적극 항거했다.
약점투성이로 가시밭 길을 걸어온 바첼레트지만 고난으로부터 벗어난 강인함과 푸근한 어머니 이미지까지 풍긴다. 지금 그에게는 '따뜻한 지도자', '엄마 리더십', '칠레인의 어머니', '편안하고 우호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바첼레트는 2010년 2월 칠레 대지진 현장에서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이재민을 진심으로 위로하며 다녔다. 당시 그의 모습은 많은 칠레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지진 발생 직후부터 날마다 TV에 출연해 국민에게 재난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알리고 침착한 대응을 당부한 그에게 칠레 안팎에서 호평이 잇따랐다.
바첼레트는 칠레의 여권신장에도 한 획을 긋고 있다. 그는 첫 대선에서 승리한 뒤 2006년 남성 10명, 여성 10명으로 이뤄진 남녀 평등 내각을 구성해 주목 받았다.
바첼레트는 이번 대선에서 당선된 뒤 최선의 내각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차별 없이 공약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대규모 여성 인재의 등용이 예고된 상태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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