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이라는 책에서 "하늘을 나는 새는 둥지를 가지고 있고, 여우는 굴을 가지고 있으며 미개인도 오두막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문명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집을 갖지 못한 처지를 풍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택보급률이 100%를 달성하고도 자가소유비율이 60% 수준을 넘지 못 한다. 이런 판국에 종종 아파트 일변도의 주거문화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재작년부터 불어온 땅콩주택 열풍도 그 중의 하나다. 땅콩주택은 건축주들이 '두 남자의 집짓기'(구본준, 이현욱 지음, 마티 출간)라는 책을 통해 제안한 주거 유형이다. 단독필지에 주거공간은 분리하고 마당을 공유하는 형태의 땅콩주택은 다양한 변종을 낳으며 탈 아파트 정서를 부추기기도 했다. 적은 돈으로나마 정원이 달린 단독주택을 갖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다.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비춰진 땅콩주택 신드롬은 또다른 내집마련 욕구를 반영한다.
땅콩주택 이전에는 전원주택이 몸살을 일으켰었다. 한 때 전원주택 바람으로 경기 양평, 여주, 광주 등 수도권 일대가 난개발로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통 및 편의시설 등 여건 문제로 다시 도시로 역류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열기가 수그러든 지 오래다.
바로 그 자리에 개그맨 김병만이 의외의 도전장을 던졌다. 여러 측면에서 경기 양평에 직접 지은 김병만의 '한글주택 1호'는 화제 못지 않게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의미를 준다. 땅콩주택과 같은 신드롬으로 이어질 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내집마련을 실현하는 방식이 아파트 등 기성주택 구입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김병만의 집짓기가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최근 김병만은 설계에서 시공까지 119㎡(36평) 규모의 집짓기 과정을 정리한 에세이 '집-꿈꾸다 짓다 살다'를 내놓았다. 총 건축비용은 1억원이다. 김병만은 "만원짜리 물건을 살 때도 자기 마음에 들 때까지 고르고 또 고르는데, 그 몇만배나 비싼 집은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데 의문을 표시한다. 김병만은 SBS '정글의 법칙'을 통해 해외 오지 곳곳에서 비록 비박 수준이지만 나무와 풀 등으로 다양한 집짓기를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곤 이를 '자연주의적 웰빙하우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집에 대한 그의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책에는 모듈화공법, 유지관리비를 줄일 수 있는 단열 방식, 표준화된 주거 등은 물론 집에 대한 생각도 잘 정리돼 있다. 특히 한글 자모를 형상화한 디자인을 채택, '한글주택'이라는 별명을 붙인 양평주택은 '나만의 집'을 꿈꾸는 이들에게 현실적 길잡이 노릇을 한다.
따라서 김병만이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부터 설계, 주택의 기능적 역할을 고려한 시공, 인테리어 전 과정에 참여하며 좌충우돌 체험한 104일간의 생생한 건축일지다. 김병만은 건축주로, 직접 일꾼으로 활동하며 집을 짓는 즐거움을 전한다.
"드디어 집의 골조가 모두 완성되었다.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실물을 보니 느껴지는 것이 달랐다. 이걸 무어라고 해야 하지 ? 마치 집이 어린아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집을 장만하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뜻이라고. 부모를 떠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신호라고...삶을 세우는 일이라고..."
책에 나오는 일부 내용이다. 김병만은 이런 말을 통해 집짓기가 단순히 집을 마련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알려준다.
한편 솔깃하게 하는 대목도 있다. 3.3㎡(1평) 당 건축비 300만원 이하로 건축했다는 점이다. 이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제법 괜찮은 품질을 확보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이 얘기는 적은 비용으로 전원에서 마당과 텃밭 달린 넓은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말한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나 전원행을 망설이는 이들이라면 꽤 참고할만한 부분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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