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리더, 리더십의 부족을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방향을 잡기 힘든 시대에 길을 제시해주고 이끌어 줄 수 있는 리더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리더들이 넘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적이 희망적이다. 바로 서울시청이나 남산에 가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이들 리더들을 만날 수 있다. 어린이부터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들까지 '리더'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는 곳, 리더십 부족을 한탄하기 전에 이곳의 도서관에 와 보면 마음이 여간 든든해지지 않을 것이다.
'리더(reader)'는 곧 '리더(leader)'다. 틀릴 것도 없다. 책을 읽지 않는 이가 진짜 리더가 되긴 어려울 테니 말이다(이 점에서 매우 예외적인 사회도 간혹 있긴 하다). 그러므로 책 읽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리더를 키우는 일이며, 한 사회의 장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독서실태를 생각하면 실망스럽다. 일년에 책 한 권을 읽지 않는 이들이 성인 10명 중 3명이라니, 책 읽기는 점차 소멸해가는 문화가 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나는 이 같은 개탄과 지적에 가세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 우리 사회가 말로는 독서진흥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책을 멀리 하게끔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펼쳐지는 독서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기 어렵게 하는 이유들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선 책을 가까이하면 불순분자로 몰릴 각오를 해야 한다. 바로 '종북주의자'라는 딱지이니, '책(book)을 따르는(從)' 이라는 낙인만 찍히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검찰총장조차 책을 사랑한 이유로 밀려나야 했으니 참으로 무서운 저주요 굴레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재미를 알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어린이들이 책을 꺼리도록 하는 건 없는가 하는 것도 살펴볼 일이다. 언젠가 초등 1학년 교과서를 보고 경악한 적이 있는데, 거기엔 책 읽기에 좋은 자세와 나쁜 자세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저자들의 노고는 고마운 일이지만 책 읽기에 좋은 '검인정 자세'라야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인가. 몸에 큰 무리가 따르는 자세라면 모르겠지만 책 읽기엔 저마다의 수백, 수천가지의 자세가 있을 텐데, 책 읽기에서부터 아이들을 '모범'과 '불량'으로 나누려는 그 발상에 그야말로 아연할 따름이다. 독서하는 사회를 만들려거든, 그러니 '종북'을 허용하라. '삐딱한' 책 읽기를 허용하라.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