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편 개봉 한국영화 중 표준근로계약서 작성한 곳 한 곳도 없어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올 초 개봉해 1281만명이란 '흥행 대기록'을 세워 누적매출액만 900억원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 그러나 이 영화의 스태프들은 '표준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못했다. 4대 보험도 보장받지 못했다. 다른 대형 흥행작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관상(912만)'과 '베를린(716만)', '은밀하게 위대하게(695만)', '신세계(468만)', '스파이(343만)' 등의 영화 현장에서도 표준근로계약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영화가 올해도 누적 관객수 1억명을 돌파하는 등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지만 정작 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은 4대 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은 열악한 업무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표준근로계약서도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2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로부터 받은 '표준근로계약서 활용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개봉한 49편(독립영화 등 제외)의 한국영화 중 표준근로계약서를 사용한 현장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자본이 부족한 중소형 제작사들은 그렇다 쳐도 대형 제작사 역시 표준근로계약서를 전혀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4대 보험 가입 여부의 경우 조사에 응한 49개 작품 가운데 5개 작품만이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중 영화 '26년'만이 전체 영화스태프들을 가입시켰고 나머지 4개 작품('하울링',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간첩', '더 웹툰:예고살인')은 일부스태프들 혹은 요청자에 한해서만 4대보험 적용을 받도록 했다.
더군다나 이번 조사에 참여한 31개 영화제작사 중 '향후 표준계약근로계약서의 도입여부'를 묻는 질문에서 38%인 12개 제작사가 '앞으로도 도입이 어렵다'고 답해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이 요원한 일임을 시사했다. 제작사들은 '표준계약서' 도입을 꺼리는 것에 대해 인건비 등 제작비가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제작비를 스타 캐스팅과 마케팅비에 우선적으로 배분하고 스태프들의 인건비는 남는 비용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 발표한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서 스태프 팀장(퍼스트)급 이하의 연평균 소득은 916만원으로 파악됐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76만3000원에 불과하다. 그 아래 직급인 세컨드급 이하의 경우에는 연평균 631만원을 받는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스태프들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 수준을 받고 있지만, 무보수로 각종 추가 및 연장 근무, 밤샘 근무를 하는 것은 당연하게 연기는 풍토가 있다"고 지적했다.
표준계약서가 의무가 아니라 권고사항인 점도 문제다. 영화진흥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영화근로자의 고용환경 개선과 복지증진을 위한 '노사정 이행 협약식'을 체결하는 등 표준 근로계약서 이행을 수차례 권고했지만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전혀 수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희정 의원은 "'표준근로계약서'가 문서로만 남지 않고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60%를 웃돌며, 지난 3분기에는 분기별 기준 역대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상태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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