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추석 떡값 기대나 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모 증권사 상품개발담당 팀장과 저녁을 함께하며 '분위기 전환용(?)'으로 꺼낸 명절 상여금 이야기에 돌아온 답이다.
일년 내내 구조조정 스트레스에 시달린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경영진이 작은 당근이라도 제시하지 않을까, 하반기 외국인 U턴으로 코스피지수가 우상향하며 온기가 스며드는 분위기가 반영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설익은 기대'에 불과했다.
한편으로는 민족 대명절을 앞둔 여의도 증권가의 삭막한 풍경이 진한 아쉬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온라인 메신저 상으로 얄팍해진 '금융투자업체별 추석선물 리스트'가 회자되며 증권맨들의 어깨를 처지게 했다. 증권사 '빅5' 중 2곳을 포함, 8개 증권사가 추석선물을 계획하고 있지 않고, 대부분 금융투자업체들이 예년보다 훨씬 저렴한 선물로 고향길을 무겁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귀성비 40만원을 책정한 H증권사에 대한 부러움이 더해져 확 달라진 명절 풍경을 실감케했다. 모 증권사 노동조합 관계자는 "H증권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노조의 힘이 강해 상대적으로 두둑한 떡값을 지원받았다는 비아냥이 들려오고 있다"며 "사내를 오가다 직원들을 만나면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비용절감이 간부회의 상시 주제가 되고 있는 증권사들은 추석 상여금은 고사하고 떡값도 지급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고 있다. 지난해 추석 명절 직전 30만원을 지급했던 N증권사는 관련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직원들에게 추석 선물로 상품권 20만원을 지급했던 K증권도 올해는 아직 미정인 상태다.
현물로 대신하는 증권사들도 눈높이를 확 낮췄다. W증권사가 10만원 상당의 선물세트를 준비한 것은 그나마 상당한 수준에 속한다. 대부분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는 예년 절반 수준인 5만원 안팎의 물품을 추석 선물로 지급했다고 한다.
중소형 증권사 한 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에도 50만원 정도의 귀성비를 지급했는데 지난해부터는 아예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갈수록 우울한 한가위가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주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자조섞인 푸념도 들려온다. 2013회계연도 1분기(2013년 4~6월) 63곳 증권사 가운데 41곳이 적자를 볼 정도로 사상 최악의 경영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나마 '추석 인심'이 유지되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등 유관기관은 외견상 넉넉한 상여금을 지급받는 모양새지만 실속은 전혀 없다. 연봉에 포함된 상여금 일부를 지급받기 때문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직원들의 임금이 하향조정 되는 분위기에서 추석 상여금을 보너스 형태로 받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수 2000시대에도 불구하고 팍팍한 살림살이가 증권가를 더욱 추레하게 보이게 하는 이유다.
조태진 기자 tj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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