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 어제 주력 계열사인 STX해양조선의 경영권을 내놓았다. STX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몰린 지 9개월 만에 오너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운명을 맞은 것이다. 강 회장의 퇴진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은 물론 금융기관에도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외환위기 직후 옛 쌍용중공업을 인수한 강 회장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조선ㆍ해운ㆍ건설 쪽으로 뻗어나가면서 STX그룹을 키웠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해운 물동량과 선박 발주가 줄어들자 그룹 전체가 흔들렸다. 남의 돈으로 덩치를 키우는 M&A 중심 확장경영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대마불사 신화는 외환위기 때 깨졌다. 기업들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정석이다. 도전정신이 기업가정신의 요체이긴 해도 은행 등 남의 돈을 무리하게 끌어다 마구 사업을 확장하라는 뜻은 아니다. 사업을 다각화한다며 이것저것 손대다가는 본연의 업마저 망칠 수 있다. 금융기관으로선 대기업이라고 무작정 큰돈을 빌려주지 말고 기업의 성장성과 경기 동향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강 회장은 STX해양조선 대표이사직과 이사회 의장은 사임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룹 정상화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오너에게 중국 다롄조선소 매각 등 일정한 역할을 맡기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대표이사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법정관리 대신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은 오너를 빈털터리로 내몬다면 향후 부실화 기업 사이에서 자율적 구조조정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오너의 경영권을 유지한 금호아시아나ㆍ팬택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그들과 STX는 오너의 배임 행위 등이 없으면서 재무위기를 맞은 공통점이 있다.
고졸 사원으로 출발해 재계 12위권 그룹을 일군 강 회장은 윤석금 웅진 회장과 더불어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한다.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인물들이 경영에 실패해 물러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 스스로 뿌린 부실의 1차적 책임은 지는 것이 마땅하다. 무리하게 확장한 곁가지를 쳐내는 강력한 구조조정과 함께 경험을 살려 될 만한 기업의 회생에 전념토록 하는 패자부활의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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