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1. 대학생 이모(여·23·서울 종암동)씨는 최근 길거리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인도를 걷는데 난데없이 불똥 하나가 날아와 그의 팔에 닿은 것. 뜨끔한 느낌에 팔을 들여다보니 살짝 그을린 상태였다. 흡연 남성에게 크게 언성을 높인 뒤 집으로 돌아온 이씨는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화가 치민다. 이씨는 "상대방이 사과해서 넘어가긴 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무슨 죄냐"면서 "조금 만 더 주위에 신경을 기울였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2.최모(남·38·일산)씨는 길거리 흡연에 대해 당황스러운 기억을 안고 있다. 그가 담배연기라도 조금 날릴라치면 연기를 피해 달아가는 여성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나름 피해 안 가게 조심해서 피는데도 무슨 벌레 피하듯 째려보는 여성들을 보면 난감하다"며 "졸지에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거리에서 흡연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일부러 찾기도 그렇고 딱히 피울 데가 없잖아요"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정부가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기 위해 금연구역을 점차 늘려나가고 있지만 '길거리 흡연'으로 인한 불편은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반사효과'라는 지적이 일기도 한다. 빌딩 입구를 비롯해 음식점, 버스정류소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흡연가들이 마땅히 담배 필 곳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도로 위 흡연을 관리할만한 특별한 규정이 없어 흡연가와 비흡연가 모두가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8일 오후 홍대 인근. 주말 전이라 비교적 한산한 거리였지만 골목이나 인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흡연자들 몇몇은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에 요령이 생긴 듯 누군가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담배 끄트머리를 아래로 향했고, 걷는 틈틈이 담뱃재를 바닥에 떨어냈다.
반면 연신 연기를 뒤로 흘리며 무심결에 담뱃재를 공중으로 탁탁 튕기는 사람도 있었다. 주변에 키가 작은 어린이라도 있었다면 자칫 불똥이 아이의 옷이나 피부에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길거리 흡연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분히 감정이 서려 있었다. 약속을 위해 홍대를 찾은 정모(여·30·용인)씨는 "특히 북적거리는 곳을 지날 때마다 신경이 예민해진다"고 운을 뗐다. 그는 "걸을 때마다 내 쪽으로 뿜어져 오는 연기 때문에 불쾌해진 경험 탓인지 담배 피는 사람만 봐도 다른 쪽으로 피하게 된다"면서 "싫은 사람이 피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지 않냐"고 호소했다.
흡연가들 또한 정씨처럼 할 말이 많다. 길에서 만난 한 남성은 평소 자주 길에서 담배를 피우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하철역에서 나온 뒤 버스로 갈아타기 전 종종 서서 담배를 피운다"면서 "여기저기가 다 금연구역인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길거리 흡연이 어제 오늘의 문제점이 아닌 것에 비해 흡연가와 비흡연가의 눈치싸움은 과거 그대로인 듯 했다. 특히 시비라도 붙을 경우 감정적인 갈등은 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담배연기로 인한 간접피해를 비롯해 불똥이 튀겨 피부나 옷·가방 등 의류에 손상을 입어도 당사자 간에 해결을 해야 한다.
이에 직장인 최모(26·부천시 원미동)씨는 "거리에서 담배 피는 사람을 제재할 수 있으면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양측을 배려해 적절한 지점마다 흡연구역이 있으면 좋겠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시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금연구역 정책은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흡연가와 비흡연가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 취지가 있다"며 "인도 등 금연구역 지정을 무리하게 확대하는 것은 오히려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장인서 기자 en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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