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노무현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논란'과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몇 건 발표됐다. 그것을 보면 본질상 별개인데 정치적으로 뒤죽박죽된 두 쟁점에 대한 민심의 풍향을 알 수 있다.
한국갤럽이 성인 6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최근 국정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나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은 NLL 포기가 아니다'라는 쪽이 우세하다. 응답자의 과반수인 53%가 이렇게 답변했고 'NLL 포기다'라는 답변은 24%에 그쳤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의 의뢰로 리서치뷰가 휴대전화 가입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55%가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공감한다'(43%)보다 높은 응답률이다. 중앙일보의 지난주 여론조사에서도 '포기다'(25%)보다 '포기로 단정하기 곤란하다'(63%)라는 응답이 더 많았다.
포커스컴퍼니는 지난주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시급한 국정조사 과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률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66%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의 26%보다 훨씬 높다. '국정원 대선 개입이 18대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라는 리서치뷰의 설문에는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63%)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응답(34%)보다 많았다.
정치권의 여야 모두 곰곰 되새길 만한 조사 결과다. '노무현 NLL 포기 발언 논란'을 부추겨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물타기하려는 여권의 시도는 실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야권 정치인들은 '북에 의한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가 민심의 한 구성 요소로 엄존하는 현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인터넷 댓글 달기 등으로 여당 후보에 유리한 여론을 유도하려 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은 검찰 수사로 혐의 사실이 확인됐다. 이어 여야가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하고 지난 주말 각각 국정조사특위 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과제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정원 개혁을 포함한 재발방지책 마련이다. 행여 일각에서라도 '계절상 정치적 하한기가 닥쳐오니 시간을 끌면서 국민의 관심이 멀어지기를 기다리자'는 식의 안이한 태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 NLL 포기 발언 논란'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에 비추어 봐도 그렇지만, 백해무익한 논란이다. 국정원이 공개한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에도 '포기' 발언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든 의도적으로 부추기려고 하면 얼마든지 부추겨질 수 있는 것이 이런 종류의 논란이다. 어느 쪽이든 기어이 완승하려 하면 부작용이나 파국을 피할 수 없다. 승패가 갈리기보다 공동 패배로 귀결될 수도 있다. 남북 분단 현실에 기인한 우리 사회의 원초적 정신분열증을 탓해야 할 것이다.
지난주 이 두 가지 쟁점을 놓고 여야가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을 다녀왔다. 중국에서 박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와 한반도 평화통일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북한 문제에 대한 협상을 벌였다. 그런데 발표된 공동성명이나 국내외 언론 보도를 아무리 살펴도 가까운 시일 내 6자회담 재개 등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을 기대하게 하는 합의는 없다. '비핵화'라고 쓰고 우리는 '북한 비핵화'라고 읽었고,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고 읽었다.
정전체제 60주년인 올해도 우리는 안팎으로 가수 양희은이 부른 노래 '작은 연못'에 나오는 붕어 두 마리처럼 살고 있다. 그 노래에서는 붕어 두 마리가 서로 싸우다가 결국은 둘 다 죽는다. 죽는 순서와 직접적 사인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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