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각종 논문 표절 사건을 보면 교수, 정치인, 스타 강사, 연예인부터 심지어는 대형 교회 목사까지 자유롭지 못하다. 학술 논문은 물론이고 학위 논문까지 문제가 되었다. 모 월간지에서는 대형 교회 목사의 논문 표절의 원인을 르네 지라르의 이론으로 해석하였다. 지라르는 욕망이 타인을 통해서 발생하며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 표현하였다. 인간이 스스로 무엇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 있는 것을 보면서 욕망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목사는 전임 목사가 대중으로부터 받았던 존경을 욕망했던 것이다.
과학계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줄기 세포 연구 부정 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과학계가 들썩였던 것이 10년도 채 안 된다. 한국 연구자들의 논문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배신의 과학자들' '과학의 사기꾼' 등의 책에서는 이런 사건들을 분석하면서 그 위험성을 누차 경고한 바 있다. 찰스 배비지는 이런 사건들을 '위조' '요리하기' '다듬기' '표절'로 구분하였고 그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실험 결과들을 조작하는 '위조'를 꼽았다.
최근의 논문 표절 사건들도 윤리적으로 심각하지만, 줄기 세포 사건 같은 위조는 무엇보다도 진실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과학의 근간을 흔들 수 있기에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과학에는 바다와 같은 자정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자정까지의 시간도 길어지고 자정 능력도 한계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지라르의 욕망 이론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부정 사건은 향후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타인의 것을 욕망하게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있는 한 이 부정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연구자들이 이런 것에서 자유롭게 되려면 남들과 비교를 하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연구를 수행했을 때 항상 논문 편수와 같은 연구 성과로 평가를 받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무언의 압박을 받게 된다. 당장의 가시적인 연구 성과가 뛰어난 연구자들만 부각되고 신화화되기 시작할 때, 욕망의 삼각형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창조경제가 제대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연구자의 윤리 의식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이런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한다. 정부에서 연구비를 줬을 때 결과를 서둘러 평가하지 말고 기다려 보자. 결과가 잘 나오지 않더라도 연구 과정에서 창조적으로 성실히 수행했다면 용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장의 연구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창의적인 연구를 하게 돼 우리나라가 그토록 원하는 노벨상 수상자도 나오지 않을까. 잘 나오지 않은 실험 결과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대한 더 깊은 고민과 연구를 거듭했을 때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창조경제의 핵심 인재를 길러 내는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을 당장 비교해서 평가하지 않고 기다려 줄 때, 학생들은 자신의 재능을 창조적으로 펼쳐 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김형원 목사는 최근 오스트리아의 유전학자인 헹스트슐레거의 '개성의 힘'이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평균을 추구하는 사회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였다. 격변하는 21세기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필요하나, 평균 점수로 서열화하고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교육 시스템으로는 그러한 인재를 길러 낼 수 없다는 강력한 충고를 하고 있다. 이제는 이 같은 쓴소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명현 카이스트 건설 및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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