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동여담]다정(多情)도 病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5초

사람마다 개를 좋아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인데, 어떤 이는 먹는 것을, 또 어떤 이는 기르는 것을 좋아한다. 둘 다 좋아하는 사람도 가끔 있다. 몇 년 전인가 아파트에서 개를 기르겠다는 큰 결심을 하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진돗개를 선택했다.


그 영리한 녀석은 집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똥오줌을 가려 나를 감동시키더니, 조금 후엔 발자국 소리만으로 사람을 구별해 나를 또 한 번 감동시켰다(나중에 알고 보니 거의 대부분의 개들이 다 이랬다). 어쨌든 집사람 표현에 따르면 내 발자국 소리만 나면 현관문 앞에 와서 반갑다고 빙글빙글 돈다는 것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껑충껑충 뛰면서 달려드는데, 좀 크고 나선 이 녀석 때문에 양복바지를 여러 벌 버렸을 정도다.

사람을 좋아하는 이 녀석의 천성은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산책길에 낯선 사람이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면, 길바닥에 납죽 주저앉아 배를 보여 주기까지 했다. 개도 성격이 있는데, 한마디로 이 녀석은 무척 정(情)이 많은 개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이 사흘간 집을 비워야 할 일이 생겼다. 개를 데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어디다 따로 맡길 데도 마땅치 않아, 결국 녀석만 남겨 두기로 결정했다. 충분한 사료와 물을 발코니 제집 옆에다 마련해 두고, 혹시 그것도 모자랄까봐 마루에도 여분의 사료를 남겨 두었다. 방문은 닫아 두되, 마루판은 깨끗이 치워 녀석이 뛰고 노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나름 신경을 썼다.

사흘 만에 집에 돌아와 현관문 앞에 서니 벌써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현관문을 발톱으로 긁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꼬리를 흔들며 펄쩍 뛰는 녀석의 뒤로 펼쳐진 집 안의 모습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발톱으로 파헤쳐 놓은 장판과 마루판, 발톱으로 긁어놓은 책장과 가구들. 잠겨진 방문을 열지는 못한 대신 사흘간 열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 게다가 거의 먹지 않은 듯 보이는 사흘 치 사료로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사람이 없는 스트레스를 이 녀석은 이렇게 해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 다정(多情)도 병이었다.


글=여하(如河)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