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이동국-손흥민의 동시 기용도 고려 중이다"
28일(이하 한국시간) 출국 직전 최강희 대표팀 감독이 남긴 말이다. 대표팀은 다음달 5일 레바논과의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을 앞두고 있다. 내용보다 결과가 중요한 경기. 무조건 이겨야만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길이 수월해진다. 결전을 앞둔 최대 관심사는 공격진 구성, 그 중에서도 손흥민의 활용 방안이다. 최 감독의 발언은 이에 대한 힌트였다.
▲이동국-손흥민 투톱, 새로운 대안?
최 감독 부임 이후 대표팀의 주 포메이션은 4-2-3-1이었다. 공격진의 꼭지점엔 주로 이동국 혹은 김신욱이 배치됐다. 반면 손흥민은 측면 자원으로 분류됐다. 분데스리가에서 최전방 공격수로서 보여준 맹활약과는 별개였다.
최 감독은 "밀집 수비 속에서도 등을 진 채 공을 잘 지켜내는 공격수가 있는 반면, 수비 뒤쪽의 넓은 공간을 침투하고 드리블로 밀고 들어가는 능력이 좋은 선수도 있다"라며 "손흥민은 후자에 가깝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시즌 손흥민이 분데스리가에서 터뜨린 12골만 봐도 알 수 있다. 도르트문트(4골), 마인츠(3골), 프랑크루프트, 브레멘(이상 1골) 등 주로 공격적 색채가 강한 팀들을 상대로 골을 뽑아냈다. 득점 루트도 대부분 역습 상황 혹은 공세에 나선 상대 수비가 옅어진 틈을 탄 배후 침투에 집중됐다. 수비 밀집 상황에서 골을 넣은 건 호펜하임전 헤딩골이 유일했다.
아시아 예선은 전혀 다른 환경이다. 최 감독은 "대부분 아시아 팀들은 한국에 비해 객관적 전력이 크게 처지는 탓에 하나같이 전체 라인을 내려 골대 부근에서 밀집 수비를 펼친다"라며 "그 때문에 수비 뒷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손흥민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기 어려운 셈이다.
함부르크가 손흥민을 2선 중앙에 세우지 않는 이유도 궤를 같이 한다. 2011-12시즌 4-2-3-1 포메이션을 쓸 당시, 손흥민은 팀 사정상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섰던 적이 있다. 활약은 미미했다. 수비수와 상대 홀딩 미드필더 사이 공간에 갇혀 장점이 발휘되지 못했다. 이런 문제는 그가 최전방 혹은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레 해결됐다. 손흥민이 줄곧 대표팀에서 측면에 배치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나마 앞쪽 공간이 열린 측면에 섰을 때 스피드와 공간 침투 능력이 살아났다.
물론 그 사이 손흥민은 진화했다. 지난 4월 마인츠전에서 처음으로 원톱으로 나서 멀티골을 뽑아냈다. 마인츠와 달리 레바논은 8~9명을 페널티 박스 근처로 깊숙이 내릴 공산이 크다. 손흥민은 세밀한 개인기나 연계플레이보단 폭발적 가속도를 앞세운 돌파에 강점이 있는 공격수다. 밀집수비를 상대로 고립될 경우 원톱으로서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돼버린다. 그렇다고 이청용, 이근호, 지동원 등 좋은 자원이 풍부한 측면에서 손흥민을 두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낭비다.
이동국-손흥민의 투톱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동국은 밀집 수비 공략에 효과적인 존재다. 교체 투입된 후반부터 공격력이 살아났던 지난 3월 카타르전이 좋은 예다. 이동국이 전방에서 공을 간수하는 동시에 상대 수비 견제를 끌어내주면, 그로 인해 생긴 공간을 손흥민이 노리는 방식이다. 시너지를 기대해 볼만 하다. 함부르크에서 루드네브스-손흥민 투톱이 보여준 것과도 흡사한 그림이기도 하다. 나아가 측면 미드필더와의 활발한 스위칭 플레이로 공격 루트를 다양화할 수도 있다. 다른 때보다 여유있는 훈련 기간도 긍정적 요인이다. 다만 둘의 동시 출격은 비단 공격진 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드필드 구성은 또 다른 변수
최강희 감독이 부임 후 치른 11경기에서 투톱 선발 카드를 꺼내든 건 세 차례. 지난해 2월 쿠웨이트전(2-0 승) 이동국-박주영, 8월 잠비아전(2-1 승) 이동국-김신욱, 10월 이란전(0-1 패) 김신욱-박주영 등을 각각 최전방에 세웠다.
가장 효과를 본 건 잠비아전이었다. 당시 최 감독은 "4-4-2를 쓰면 투톱이 상대 수비에게 부담을 줄 수 있고, 장신 공격수를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도 분명 힘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근호 역시 잠비아전 직후 "투톱 전술을 쓰면서 공격진에 무게감이 실렸다"라며 "제공권이 좋고 힘 있는 선수들이 가운데서 지키고 있으면 2선에서 플레이하기가 편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급부가 만만치 않다. 투톱 기용은 필연적으로 미드필드 한 명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대표팀이 나머지 8경기에서 원톱을 썼던 근본적인 이유다. 최 감독은 "현대 축구는 미드필드 싸움이 중요해서, 원톱을 세운 뒤 2선 등 배후에서 빠져 들어가는 움직임을 많이 가져간다"라며 "4-4-2를 쓰면 중원이 옅어지기 때문에 미드필드가 강한 팀을 만났을 때 전체 수비 밸런스 등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라고 지적했다. 바꿔 말해 공격수를 한 명 늘이면서도 중원 싸움에서 힘을 잃지 않는 것이 투톱 활용의 관건인 셈이다.
이번 대표팀에선 기성용과 구자철이 모두 컨디션 난조로 제외됐다. 황지수도 소집 직전 부상으로 낙마했고, 박종우마저 당장 레바논전에는 징계로 빠진다. 결국 김남일-이명주-한국영-이승기 정도가 4-4-2의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 가능한 자원. 김보경도 중앙엔 설 수 있지만 원톱 아래 공격형 미드필더가 더 적합하다. 그래서 김남일의 기용은 확실시된다. 상대 역습 차단과 공수 밸런스 유지는 물론, 베테랑으로서 중심을 잡아줄 존재의 필요성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그의 짝이다. 30대 중반 김남일의 운동량은 분명 예전만 못하다. 인천에서도 구본상의 폭넓은 활동량이 이를 상쇄시켜 준다. 더구나 그는 더블 볼란테가 아닌 4-4-2 중앙 미드필더다. 부지런히 넓은 지역을 뛰어다니는 동시에, 공수 양면에서 기여도가 큰 존재가 필요하다. '박스 투 박스' 유형의 이명주가 적격이지만, 일천한 대표팀 경험으로 불안감을 지우기 어렵다. 이승기와 한국영은 각각 공격과 수비에 방점이 찍히는 미드필더. 자칫 어느 한쪽의 균형이 무너지기 쉽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 감독은 선뜻 레바논전에 이동국-손흥민 투톱 카드를 꺼내들기가 쉬울 수 없다. "레바논전 결과에 따라 손흥민을 중용할 것"이라던 그의 발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1일 우즈벡전부터는 박종우가 출전할 수 있는데다, 레바논전에 승리할 경우 손흥민 역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실험'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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