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 요즘 공정거래위원회를 보면 안쓰럽다. 공정위가 주역이어야 할 경제민주화 시대에 도리어 동네북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공정위에 힘을 몰아주자는 얘기는 듣기 힘들고 공정위의 힘을 빼고 꼭 필요한 기능은 다른 곳에 나눠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공정위 조사권의 지방자치단체 이양, 공정위 처분에 대한 을의 불복기회 보장, 과징금에 대한 과다한 재량권 축소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왜 공정위의 권한을 축소하고 이양하려는 것일까? '갑은 봐주고 을은 외면한다'는 불만이 진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의원들은 28일 공정위 처분에 대한 을의 불복기회를 보장키로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사건을 접수한 뒤 시간을 끌거나 사건을 기각하고 이유조차 문서로 알려주지 않아도 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고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을을 하염없이 외면해도 되는 무작위의 권한을 없애기로 한 셈이다.
민주당은 가칭 남양유업법을 제정하면서 공정위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권을 시·도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의 권한을 약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당 관계자는 "부족한 공정위 인력을 지자체 인력으로 보강하면 조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공정위에 대한 을의 불신이 워낙 크다"고 설명했다. 입법청원을 한 참여연대의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공정위가 아니라 불공정위"라고 말한다. 을의 고통을 외면한 대가가 공정위에 대한 개혁요구로 나타난 셈이다.
국세청의 권한강화와 비교하면 공정위는 더 초라해 진다. 지난 5월2일 국회정무위원회에서는 공정거래법개정안과 FIU(금융정보원)법개정안이 함께 통과됐다. 하나는 공정위의 힘(전속고발권)을 약화시켜 감사원장, 중소기업청장, 조달청장에 나눠주는 내용이고 하나는 국세청이 탈세조사를 위해 금융정보원 정보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강화하는 내용이다.
국세청은 4대 권력기구로 꼽힐 정도로 힘이 세다. 비위 사건도 자주 있는 강력한 권력기구인 국세청은 만만치 않은 견제를 받는다. 반면 공정위는 공정거래질서를 지키고 경제력집중을 억제하며 약자를 보호한다는 인식으로 견제보다는 옹호를 받아왔다. 그러나 사정이 판이하게 변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세청은 복지재원조달을 위한 첨병이고 공정위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주역이다. 그런데 복지재원확충을 위해 국세청권한은 강화하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공정위 권한은 약화됐다. 그것도 여야합의로.
경찰청과 국세청은 대통령 공약이행을 이유로 일선인력을 대폭 늘리고 있다. 공정위는 재벌조사전담기구를 만들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했으나 전혀 진척이 없다. 안행부 관계자는 "한번도 협의한 적이 없다"고 한다. 공정위는 "내부 검토중이다"고 말한다. 추진동력이 약해졌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스스로의 업보에 대해 자성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시대에 궁색한 상황에 처한 이유를.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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