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CJ그룹의 탈세 및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이 나날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검찰의 수사는 초대형 회오리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거대한 폭풍의 시작은 한 통의 편지였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편지였다.
그 편지는 이재현 회장의 재산 관리를 맡았던 이모 전 재무2팀장(44)이 이 회장에게 보낸 것이었고, 수 년 전에 보낸 그 편지는 이제 재계 14위 거대 기업의 운명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때 핏줄보다 내밀했을 두 사람의 애증의 역사가 녹아 있다. 이 전 팀장은 재판에서 자신의 업무 내용을 "기타 명의 주식관리 업무"라고 말했다. 무기명채권을 팔아치우거나 회사 임직원 명의로 관리해 온 차명증권계좌 등을 통해 이 회장의 재산을 불리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 회장과 이 전 팀장의 관계는 빠르게 달아오른 만큼 빠르게 식은 관계였다. 그는 입사한 지 3년 만에 이 회장의 신임을 얻어 부장급인 CJ 비서실 재무2팀장이 됐다. 후임자이자 이제는 부사장급 임원인 성모씨의 2008년 경찰 진술을 감안하면 최소 537억원을 '굴리는'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그 '빛'은 몇 년만에 '어둠'으로 뒤집혔다. 이씨는 이 회장 개인자금 170억원을 멋대로 사채업자에 빌려줬다가 이를 돌려받기는커녕 자신이 관리하던 차명계좌 내역과 자금 관련 자료를 폭로당할 위기에 처해 살인청부에 나선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재현 회장은 '믿고 도장 맡겼다 돈을 뜯긴 피해자'처럼 비춰졌다.
이씨는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며 자신의 혐의를 씻어내렸지만 마음 속 앙금은 여전할 듯 하다. 그는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준 이유로 "이 회장의 차명재산을 증식시킬 방안을 고심하다 원소유자가 드러날 우려가 없는 사채업에 투자하는 것이 차명재산이 갖는 투자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경영상 판단에 따랐다"고 설명했다. 주인을 들키지 않고 돈을 불리려다 빚어진 일이라고 한 셈이다.
사건이 불거지며 회사를 떠난 그는 이 회장에게 '협박성 편지'를 썼다. 경찰이 확보해 이제는 검찰이 보유 중인 그의 USB에 담긴 '협박편지'엔 회장을 위해 자금을 운용해 온 그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A4용지 10장 분량으로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USB엔 이번 수사로 검찰이 찾아내려는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 단서도 함께 담겨 있다. 한순간 대기업 간부가 사주한 '퍽치기'로 귀결될 뻔 했던 사건에서 당초 이 전 팀장이 확보하려던 건 사채업자의 목숨이 아닌 그가 가진 가방으로 전해진다. 평소 가깝게 지내기도 했던 그 사채업자는 중요한 자료는 모두 가방에 넣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방에 들어있을 법 했던 차명재산 내역은 그의 편지와 함께 USB에도 고스란히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애증과 우연이 뒤섞여 전개되고 있는 CJ 드라마는 어디로 갈 것인가,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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