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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김대규의 '야초(野草)'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7초

돈 없으면 서울 가선/용변도 못 본다./오줌통이 퉁퉁 불어가지고/시골로 내려오자마자/아무도 없는 들판에 서서/그걸 냅다 꺼내들고/서울 쪽에다 한바탕 싸댔다./이런 일로 해서/들판의 잡초들은 썩 잘 자란다./서울 가서 오줌 못 눈 시골 사람의/오줌통 불리는 그 힘 덕분으로/어떤 사람들은 앉아서 밥통만 탱탱 불린다./가끔씩 밥통이 터져 나는 소리에/들판의 온갖 잡초들이 귀를 곤두세우곤 한다.


김대규의 '야초(野草)'


■ 어떤 선사(禪師)는 깨달음의 화두를 묻자, '오줌 좀 누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방금 옹알이 뗀 어린아이라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그 말을 곱씹어보니 '오줌 누는 일'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다급하고 절실한 일이다. 밥은 먹여줄 수 있고 옷은 입혀줄 수 있지만 오줌은 결코 대신 누어줄 수 없다. 오직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자기만의 문제이다. 만수위로 출렁거리는 오줌통과 대치하고 있을 때, 그 긴박한 상황이야말로, 자기 안의 문제와 싸우는, 치열한 절대절명의 순간이 아닌가. 대학 시절 시학(詩學) 수업시간에 김대규의 '야초'를 읽었다. 시행(詩行)을 바싹바싹 들어올리는 긴장감과 그걸 풀어 쏘아대는 해방감을 함께 느꼈다. 돌아보니, 우직하지만 참 아름다운 생명의 송가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그걸 냅다 꺼내 드는 본능적인 동영상. 안도의 한숨을 대신 내쉬어주고 싶을 만큼 절절하다. 도시 문명의 질곡에 항의하는 오줌발이 우렁차고 세다. 나훈아의 노래 '잡초'를 들으면,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 풀 위에서 서울을 향해 대포를 쏘는 저 '야초'의 사내에게로 직행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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