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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사람섬김(人事), 사람죽임(人死)

시계아이콘읽는 시간50초

허리나 고개를 꾸벅 숙여서 하는 절, 혹은 눈짓을 보내며 하는 알음신호를 '인사'라고 하는데, 회사나 관공서에서 사람을 뽑고 돌리고 상벌하는 일도 '인사'라고 말한다. 한자로도 같은 '인사(人事)'인데 굳이 둘을 구분하려고 앞의 것은 앞에 악센트를 줘서 '인'사라고 하고, 뒤의 것은 뒤에 힘을 줘 인'사'라고 한다.


굳이 맥락을 따지지 않더라도 둘이 명확히 구별되는 이유는 앞의 인사에는 왠지 상냥한 구석이 있고 뒤의 인사에는 왠지 살벌한 구석이 있어, 혼동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작용한 탓일 게다.

그래서 앞의 인사를 말할 땐 '하고' '받는다'고 표현하지만, 뒤의 인사를 가리킬 땐 '하고' '당한다'고 표현한다. 그래서일까. 인사권자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에게 인사 철은 굳이 을사년이 아니더라도 을씨년스러울 수밖에 없다.


둘 사이엔 뚜렷한 차이가 있으니 앞의 인사는 별로 뒷말이 없지만, 뒤의 인사는 여러 가지 잡음이 많다. 뒷말뿐만 아니라 앞말도 많다.

인사를 '당하는' 입장이야 말해 무엇하랴. 눈꼴 사나운 상사의 코앞에다 사표를 배배 꼬아 냅다 쏘는 호기로움을 부리고픈 마음이 꿀떡 같지만,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새끼가 눈에 밟혀 사표를 쥐었던 손을 슬그머니 놓는 게, 샐러리맨 아니던가. 동료와 싸워 이기라고 부추기는 것도 인사요, 외딴 구석에 홀로 남아 투명인간 취급받는 것도 인사다.


그렇지만 인사를 '하는' 쪽의 고민 역시 만만할 리는 없다. 조직의 생기와 활력을 높이고, 사람을 일하게 만들어 의기 백 배, 용기 천 배, 진기 명기가 백만 배로 충천하도록 만드는 게 인사렷다. 어느 조직이든 인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스트레이트에 해설박스는 물론, 셰익스피어 희비극이 절절이 녹아 있음은 이런 연유다.


일부 금융지주사들의 회장 인사를 앞두고 은행권이 뒤숭숭하다. "태풍 오는데 앞마당 쓸면 뭐하겠느냐"는 심리일까. 업무가 올스톱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쯤 되면 일하자고 하는 인사(人事)가 아니라 사람 잡는 인사(人死)가 된 꼴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90% 이상을 인사와 사람의 적재적소, 능력을 보는 것에 노력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사의 20% 정도는 실패했다고 자인한다." 참 어려운 게 인사다.


<여하(如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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