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조항 내 ‘직접 진찰’ 문구···발급 주체, 진료방식 어디까지 제한?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의사가 전화통화만으로 처방전을 내줬더라도 직접 진찰한 환자에 대해서라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앞서 헌법재판소에서도 팽팽하게 의견이 맞섰던 사안인 만큼 의료법 규정이 보다 명확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의료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의사 신모(47)씨에 대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대법원은 “처방전 작성 관련 의료법 조항은 스스로 진찰을 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일 뿐 대면진찰을 하지 않았거나 충분한 진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 일반을 금지하는 조항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어 “전화 진찰을 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자신이 진찰하거나 직접 진찰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며 “원심은 전화 또는 이와 유사한 정도의 통신매체만에 의한 진찰은 개정 의료법 조항의 ‘직접 진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의료법이 ‘직접 진찰’과 ‘직접 대면 진찰’을 구별하여 사용하고 원격의료 허용 범위에 관한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는 점, 국민 건강 보호·증진 목적 내에서 국민의 편의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용하는 것을 금지할 이유가 없는 점, 첨단 기술의 발전 등으로 세계적으로 원격의료의 범위가 확대되어 가고 있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2006년 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672차례에 걸쳐 전화 통화만으로 환자들에게 일명 ‘살 빼는 약’을 처방해 준 혐의(의료법위반)로 2008년 신씨를 재판에 넘겼다. 신씨 병원에서 한차례 이상 진료받고 ‘살 빼는 약’을 처방받았던 환자들은 이후 전화통화 진찰만으로 처방전을 발급받았다는 것이다.
재판에선 의료법이 처방전 작성·교부를 제한하는 ‘직접 진찰’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쟁점이 됐다. 처방전 작성 교부에 있어 현행 의료법은 ‘직접 진찰한 의사’로, 2007년 개정 이전 의료법은 ‘자신이 진찰한 의사’로 제한하고 있다.
앞서 1·2심은 “전화의 방법으로는 환자의 병상 및 병명을 규명하여 판단하는 진단방법 중 ‘문진’만이 가능하고, 다른 진단방법을 사용할 수 없어 최선을 다해 환자가 치료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의사의 ‘진료의무’가 소홀해질 우려가 매우 크다”며 “전화 또는 이와 유사한 정도의 통신매체만에 의한 진찰은 직접 진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유죄로 판단했다.
신씨는 2심에서 ‘직접 진찰’이라는 법 조항이 명확하지 않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냈으나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지난해 3월 “‘직접 진찰’은 ‘대면진료’ 외에 달리 해석의 여지가 없다”며 “해당 조항은 의료인의 대면진료 의무와 진단서 및 처방전 발급 주체를 함께 규율한 것”이라고 합헌 결정했다.
당시 헌재도 합헌4 대 위헌4로 팽팽하게 의견이 나뉘었다.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들의 경우 “진찰 방식의 제한보다 발급 주체만을 한정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대면진찰로 한정해 해석하더라도 그 외 모든 진찰을 전면 금지하는 것인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도 “개정된 의료법 조항의 ’직접 진찰한 의사‘의 의미는 개정 이전 ’자신이 진찰한 의사‘와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결론내면서도 “문언 해석만으로 ‘직접 진찰한 의사’에 ‘전화 등으로 진찰한 의사’가 포함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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