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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4대악 척결, 벼룩 잡다 초가삼간 태울라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9초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 폭력, 불량식품 등 이른바 '4대악' 척결에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달 초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축목표관리제'를 도입해 매월 실적을 체크하겠다고 하더니 11일엔 이성한 경찰청장이 직접 "4대악 척결에 성과가 없는 지역의 지휘관은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도 4대악 척결에 정예 검사들을 대거 투입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시민들이 치안 상태 등 생활안전 관련 정보를 쉽게 파악해 대비할 수 있도록 '생활안전지도'를 제작하는 일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집값 하락 등 주민과 지자체의 반발, 인권침해 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일었지만, 정부는 강행 태세다.

일단 좋다. 시민들의 일상 생활 안전에 큰 해악을 끼치는 4대악에 정부가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에 대해 시비를 걸 이유는 없다. 어린이, 여성 등을 상대로 한 흉악범들이 날뛰는 세상에서 시민들이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생활안전지도 정책도 일견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정부의 지나친 의욕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옛 속담도 떠올리게 한다. 예컨대 불량식품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정부는 첫 번째 타깃을 학교 앞 문방구로 정하고 불량식품 판매를 적극 차단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학교 앞 200m는 이미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으로 설정돼 강력한 점검ㆍ단속을 받고 있는 곳이다. 가뜩이나 장사가 안돼 시름하던 학교 앞 문방구들은 이중 삼중의 단속과 규제에 시달리게 됐다.

또 불량식품 단속은 그동안 지자체 특별사법경찰의 주된 업무였다. 경찰,검찰 등은 보다 강력한 범죄, 즉 절도,강도,사기 등을 맡아 처리해왔다. 나름 효율적인 업무 분담이었다. 그런데 이젠 일선 검사들이 학교 앞 문방구에 드나들며 '쫀드기','아폴로' 등 불량 식품을 파는지 여부를 감시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 됐다. 소 잡는 데 쓸 칼을 닭 잡는 데 쓰는 꼴이다. 일선 경찰들도 "민생 침해 정도가 훨씬 큰 도둑, 강도, 사기꾼 잡으러 다녀야 할 시간에 불량식품이나 단속해야 하냐"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학교폭력,가정폭력,성폭력도 반드시 줄여 나가야 할 범죄임에 틀림없지만, 감축목표관리제의 도입은 실적 쌓기를 위한 무리한 단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 초기 대통령이 경범죄 단속을 강조하자 1년 만에 처벌 건수가 10만건에서 30만건으로 확 늘어난 것이 우리 공권력의 현실이다.


생활안전지도 작성 계획도 마찬가지다. 범죄,치안, 재해 등 관련 정보를 제공해 안전 생활을 돕겠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 '범죄 우범 지역'이라는 낙인을 찍는 부작용이 있을 수있다는 점부터 면밀히 살펴야 한다. 2008년, 2010년에도 각각 비슷한 정책이 추진됐다가 실패했던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의 일부 도시에서 이를 도입해 효과가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으나 우리는 미국보다 훨씬 국토가 좁고 인구가 밀집돼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의욕도 좋지만 신중할 땐 신중해야 한다. 뭐든지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한 법이다.




김봉수 기자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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