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의 자살'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전투가 끝나갈 때 반드시 나를 쏘아주게" 노량 앞바다에서 마지막 일전을 앞둔 밤, 이순신 장군은 장졸들에게 휴식을 명하고 부하장수 한명을 불러 간곡히 이른 말이다. 독특한 이력의 저자가 늦은 나이에 이순신 장군에 관한 소설을 들고 나타났다. 소설 '충무공 이순신의 자살'을 쓴 장영수씨(사진, 49)다.
소설은 1598년 8월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장군과 관련, 제목처럼 일부 학자가 제기한 '의(疑)자살설'을 따른다. 소설속에는 위대한 장군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겁에 질린 일본 장수, 분노에 찬 풍신수길, 사랑을 찾아 조선 땅에 온 일본 여인, 반란을 획책하는 고려의 후예들, 승병, 자객들이 나와 엄혹한 전장을 누빈다. 그래서 장군의 위대한 업적과 캐릭터는 이들의 행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바로 자살에 이르는 시대적 환경과 여러 정황을 추적하고 있다. 작품 구조도 책 제목만큼이나 새로운 시도가 넘친다.
장씨는 정통하게 소설을 배우거나 등단한 작가는 아니다. 소설의 완성도는 허름하고, 인물도 캐릭터가 완벽히 구축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장군의 위대함, 작품의 의도인 '의자살설'에 대한 설득력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장씨는 "20대말에 이순신 장군이 자살했을 것이라는 내용을 본 적 있다. 그 후로 장군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자는 상고를 나와 은행과 증권사에서 근무하다 IMF 구제 금융 당시 실직한 후 지금까지 영어학원을 운영해왔다. 그런 와중에 틈틈이 홀로 습작하며 글쓰기를 연마했다.
소설을 완성한데는 일본 쯔쿠바 대학에서 '근세 문학'을 공부하던 여동생의 도움이 컸다. 여동생은 틈틈이 이순신에 대해 기록된 일본 역사자료를 모아 보내줬다. 각종 사료에는 전쟁이 끝난 이후 오랫동안 조선은 장군의 업적을 폄하하는데 급급했던 반면 일본 역사에는 경외와 찬사, 깊은 트라우마로 가득차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 연합함대의 지휘자 '도고헤이 하찌로'는 트라팔가 해전의 넬슨제독과 이순신 장군을 빗대어 전승을 축하하자 "이순신 장군과는 비교할 수 없다. 장군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축할 정도였다.
이순신 장군에 관한 소설은 많다. 또한 환란이 있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장군에게서 영감을 얻거나 해답을 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이순신 장군은 새롭게 쓰기는 무척 어렵다. 그런 배경에 불구하고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진지함이 빚은 결과다.
그가 당초부터 소설을 쓰려고 했던 건 아니다. '의자살설'을 접하고 일본 자료를 모을 당시만 해도 그는 그저 이순신 장군 매니아'에 불과했다. 모아진 자료가 아까워 소설가 이문열을 찾아가 소설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이문열은 "직접 쓰는게 좋겠다"고 격려했다. 이에 장씨는 "이순신 장군 연구를 시작해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20여년이 걸렸다.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다시 소설을 쓰게 될 지는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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