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날 춘추관에 들어왔다. 춘추관은 청와대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머무는 건물이다. 20여일이 지났지만 춘추관 외 가본 곳이 없다. 요새는 '꽃사슴 봤느냐'는 질문도 자주 듣는데 그림자도 못봤다. 답답해진 한 기자가 대변인에게 "기자들도 다 바뀌었으니 청와대 투어라도 한 번 하자"고 했지만 별 반응이 없다. 또 다른 기자는 "양계장 같다"고 투덜댔다. 모이 줄 때만 기다리는 닭처럼 수동적인 취재 환경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다.
불통에 대한 지적엔 어김없이 '정부조직법'이 핑계로 돌아왔다. 그것 때문에 정신이 없어 다른 곳엔 신경 쓸 여력도 없다고 했다. 불통 이미지를 감수하며 "협상 같은 건 없다"고 담화를 발표한 것도 절박감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지 대통령의 일관된 소통 방식은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솔직히 박근혜 정부가 어디로 가려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춘추관에 앉아있으면 창조경제와 일자리, 국민행복 같은 낱말들을 주입식 강의처럼 듣게 되지만, 그 이상이 느껴지진 않는다. 또 요새는 '4대 사회악 근절'이란 말도 자주 등장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이란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조금 부족하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대선 전부터 지적해온 바다.
국민들은 창조경제 그 너머에 있을 우리 사회의 미래가 궁금하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란 구호가 절대 가치가 되던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이 꿈꾸는 나라는 취임사에도, 국군장교 합동임관식 인사말에도, 국정토론회 모두발언에서도 찾을 수 없다. 대통령의 미니홈페이지와 트위터, 페이스북도 뒤져봤지만 역시 별 소득은 없었다. 어떤 것은 대선날까지만 활발하다 선거가 끝난 뒤론 방치상태다. 또 다른 것은 보좌진들이 홍보용으로 근근이 관리하고 있을 뿐 주인장은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대통령은 진돗개 두 마리를 들고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사회와 연결된 가느다란 끈마저 놓아버린 건 아닐까.
청와대 입성 후 스마트폰은 개통하셨는지도 궁금하다. 원래 박 대통령은 개인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정보통신기술(ICT)이라 강조하는 만큼, 지금은 최신 IT기기를 곁에 두고 있지 않을까. 어떤 기종을 쓰는지, 내려받은 어플들은 무엇인지, 눈길을 사로잡아 카메라에 담지 않을 수 없던 순간들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대통령의 서재다. 청와대로 거처를 옮긴 후 서재는 어떻게 꾸며졌을까. 한 정치인은 당시 대선후보였던 박 대통령의 서재를 두고 "책이 별로 없었고 증정 받은 책들만 주로 있어 통일성을 찾기 어려웠다"며 "여기가 서재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대통령 당선 후 취임까지 두 달 넘게 여유가 있었으니 공을 들여 서재를 새로 꾸미지 않았을까. 삼성동에 놔둔 책은 무엇이고 청와대에 들고 온 것은 어떤 종류들일까. 새로 읽어야겠다 마음 먹은 책은 무엇이며 그의 참모들은 어떤 책을 권해드렸을까.
우리는 국민과 꿈을 나누는 대통령을 오랜 기간 갖지 못했다. 자신은 옳은데 국민들이 몰라준다는 말은 이제 좀 식상하다. 정부조직법 문제도 원하는 대로 해결됐으니 변화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지난 20여일 간의 모습이 설마 우리가 앞으로 5년간 보게 될 그것의 전부는 아닐 거라 믿고 싶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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