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도 조선학생 차별 용어...전우용 교수 청산 주장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해 독립을 선언한 3.1절 94돌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며 온 민족이 일어선 지 100년이 가까워지고, 해방 60여년이 지났지만 과거 일제가 강요한 식민지배 이데올로기가 배어 있는 용어 중 상당수가 여전히 우리 일상에서 별 생각 없이 쓰이고 있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일제잔재 용어 중 일제가 강압한 군국주의나 식민지배적인 배경과 목적인 깔린 용어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고교생의 학교 성적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는 '내신(內申)'이라는 용어가 대표적이다. 일제는 1930년대 초부터 민족의식을 가진 학생들의 진학과 취업을 제한할 목적으로 학교장 '내신 제도'를 시행했다. 일제의 조선 학생에 대한 감시 통제 정책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학교장이 내신에 담은 관찰결과도 문제였지만 관찰과정의 문제도 컸다. 교사와 교장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심각한 불이익을 입게 된다는 사실을 안 학생들은 복종하는 인간,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인간이 돼 갔다.
행정구역명에서도 '굴욕적인' 명칭이 버젓이 쓰이고 있다. 서울의 25개 지자체 중 '중구'라는 명칭은 1943년 일제가 서울의 행정효율화를 위해 구제(區制)를 실시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중구는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곳으로, 특히 일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던 곳은 본정(本町, 혼마치)으로 불렸다. 중구는 혼마치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중구가 서울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해방 뒤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을 하면서 혼마치를 '충무로'로 변경하는 등 일부 지명을 바꿨지만 중구 이름은 그대로 남겨 뒀다.
전 교수는 "혼마치를 충무로로 바꿨는데, 왜 중구는 그대로 쓰고 있는지 알수 없다"면서 "숭례문이 다시 복구됐는데 이를 기념해 '남대문구'로 새로 개명해도 좋을 것 같다. 동대문구, 서대문구는 있는데 남대문구는 없지 않는가"라고 제안했다. 일부에서는 '남대문' 역시 일제가 '숭례문' 대신 강요한 명칭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남대문'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볼 수 있어서 대체용어로 쓰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전 교수는 "오히려 몇년 전 일본 유학생이 이를 지적하며 '남대문구'나 '남산구'로 명칭을 바꾸자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면서 "정작 우리는 이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애국가 제창 후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 있었다. 여기서 '호국영령'이란 용어 역시 일제의 군국주의 이데올로기가 배어 있는 말이다. 전 교수는 "194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죽은 군인들이 귀신이 돼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는데, 이를 '호국영령'이라고 표현했다"며 "우리의 정신과는 어울리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했다.
일본식 군사주의 문화에서 비롯된 용어가 지금은 '남성미'를 뜻하는 것으로 변천된 예도 있다. '박력'(迫力)은 근대의 군대 용어로 '압박하는 힘'을 의미한다. 이는 보병의 미덕이지, 남성미를 뜻하지 않았다.
전 교수는 "일본어로 번역돼 지금 우리에게 통용되고 있는 가치배제적 용어가 아닌 일제의 식민통치 의도가 깔린 용어는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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