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오랜만에 중소기업계에 봄날이 왔다. 중소기업 대통령을 표방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여기저기서 '중소기업 지원'을 외쳐대고 있는 덕분이다. 청와대는 물론 정부부처, 감독당국, 대기업까지 입만 열었다하면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이다. 중소기업 관련 협회들도 현장의 손톱 밑 가시를 찾느라 분주하다. 마치 대한민국 전체가 중소기업 열병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바로 5년전이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대기업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고조돼있었다. 당시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표방한 이 대통령이 '전봇대 뽑기'를 통해 과감한 규제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역시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화답의 수위를 높였다. 대통령과 대기업은 '환상의 짝꿍'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사석에서 10대 그룹 한 계열사의 CEO(최고경영자)를 만났다. 1년전만 해도 화색이 돌았던 그의 얼굴은 지쳐있었다. 그는 "전봇대 뽑힌 자리에 새로운 전봇대가 생기고 있다"며 "이 대로라면 5년 뒤 다시 전봇대 뽑기 운동을 해야 할 판"이라며 툴툴댔다.
지금 돌아보면, 이 사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전봇대 뽑기 정책은 정권 초기 반짝 그쳤다. 전경련이 지난해 8월 발표한 '대기업 규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는 84개 규제 중 34개가 이명박 정부 기간에 만들어지거나 개정됐다. 완화된 규제는 7개에 그쳤다.
경제정책에도 일관성이 없었다. 글로벌 위기 등으로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싶으면 프랜들리를 꺼냈다가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지적이 나오면 규제 카드로 바꾸는 식이었다.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제각각이었다. 대기업을 정치논리로만 봤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치논리의 대상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봇대 뽑기도 손톱 밑 가시 빼기로 대체됐다. 대선기간 중소기업인들에게 공정한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면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는 당선 확정 후 슬그머니 성장 논리에 가려지는 모습을 보였다. 선거용이란 지적이 일자 취임식날 다시 '경제민주화' 카드가 되살아났다. 지난 5년간 정치논리로 대기업 정책을 펼쳤던 그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이 상태라면 중소기업 봄날이 5년은커녕 1년도 지속되기 힘들다. 당장 글로벌 경기 침체와 내수 침체 등의 압박으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면 성장론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중소기업계는 손톱 및 가시 빼기 등의 보유주기식 성과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인프라 등에 투자하고 신기술과 인력을 개발해 함께 글로벌 스타가 될 수 있는 산업생태계의 선순환 골격이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정부가 기업의 든든한 서포터가 돼야 한다. 중소기업 대통령, 그저 화려한 수식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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