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고장 사고, 기준 코걸이
한수원·원안위, 취합 기관마다 통계 제각각
정부 "특별히 별 게 아닌데 다 집어넣을 필요 없어"
전문가들 "통계지표 통일화해 원전에 대한 국민 신뢰 높여야"
[아시아경제 김종일 기자] 원자력 발전소 운전 중 터빈 발전기가 고장이 났다면 원전 사고일까 아닐까? 정기적인 점검과 정비를 실시 중에 원전에 문제가 생겼다면 고장일까 아닐까? 답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국내 원자력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원전 고장과 사고 집계 기준이 달라 국민들이 큰 혼란을 느낄 여지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18일 이들 기관의 자료를 살펴보면 한수원과 원안위는 모두 지난해 원전 사고를 모두 17건으로 집계했지만 세부내용은 달랐다. 한수원 측은 지난 2월 신월성 1호기 정지와 6월 신월성 1호기, 9월 월성 1호기 정지를 원전사고 집계에 포함했지만 원안위는 이를 제외시켰다. 반면 지난 2월 발생한 고리1호기 사고, 11월 울진 6호기 사고에 대해 원안위는 고장사고로 분류했지만 한수원은 이를 사고로 분류하지 않았다.
특히 작년 2월 사고 은폐 논란이 있었던 고리1호기 정전사고도 한수원이 집계한 원전사고 건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1년 원전 사고 통계도 한수원 10건, 원안위 13건으로 다르다. 2010년 원전 사고 통계도 한수원은 10건, 원안위는 14건으로 차이가 있다. 각 기관에 따라 원전 사고 통계가 들쑥날쑥 한 것이다.
한수원과 원안위 통계가 다른 이유는 두 기관이 원전사고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전력발전 정지 여부를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발전기 시험운전이나 예방정비 중 발생한 사고나, 문제 발생이 예상돼 수동으로 발전기를 정지시키는 경우는 원전사고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실제 운전 중 예상치 못한 발전기 정지만 사고로 집계하는 것이다.
반면 원안위는 시험운전도 사용승인을 받은 후 발전기를 가동한 것이기 때문에 시험운전 중 일어난 사고도 원전사고로 집계한다. 그러나 원안위는 원자로가 완전히 정지한 경우만 사고로 인정한다. 지난 9월 월성1호기 고장도 원안위는 원자로가 정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지난해 통계 차이에 대해서도 원안위 관계자는 "전력생산을 중요 기준으로 삼는 한수원은 터빈 발전기 중단을 사고 통계에 포함시켰고 안전 기준이 다른 원안위는 계획예방정비 중 일어난 사고를 포함시켜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안위 측은 계획정비기간 중에 사고도 다 통계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해명했다.
두 기관의 서로 다른 통계기준은 매년 국정감사에서 지적되고 있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한수원과 원안위는 통계뿐 아니라 관리 감독하는 정부기관도 다르다. 한수원은 지식경제부 산하 공기업이지만 원안위는 대통령직속 중앙행정기관이다. 국회 담당 상임위원회도 한수원은 지식경제위원회가, 원안위는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담당한다. 원안위는 차기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로 이전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원전 고장 집계의 일원화를 주문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일반 시민들은 원전이 얼마나 안전한지 신뢰할 수 있는지를 이들 기관이 발표하는 데이터를 보고 판단한다"며 "서로 다른 기관에서 발표하는 통계지표를 통일해 국민들의 혼란을 줄여 원전과 관계된 통계자료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혼란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지경부 원전산업정책과 하동환 사무관은 "두 기관의 통계 모두 각각의 목적과 의미가 있어 다 같이 사용하고 있다"며 "특별히 별 게 아닌데 굳이 다 집어넣을 필요 없이 발표할 때 발표기관의 기준을 정확히 병기하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종일 기자 live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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