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전달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고 보는데…." 복지공약 폐기 논란에 대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17일 발언이다.
후보 시절 박근혜 당선인은 암 등 4대 중증질환의 의료비를 국가가 100%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진 내정자의 말은 "도대체 무엇의 100%냐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박근혜 캠프는 공약의 세부 내용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이 오해를 대선 기간 내내 조장했다. 물론 이를 끝까지 따져 묻지 않은 언론의 책임도 있다.
현재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95%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에서만 그렇다. 나머지는 비급여 검사나 의약품 등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증질환 환자에게 가장 큰 부담을 주는 것은 이른바 3대 비급여로 불리는 간병비,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다. 의미상으론 '선택 항목'이지만 이들을 선택하지 않고 중증질환을 치료받는 건 불가능하다. 때문에 국민들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암에 걸려도 최소한 가계파탄은 면하겠구나" 했을 테다. 공약에 대한 '순간적인' 이해부족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박 당선인 역시 TV토론에서 "간병비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진 내정자가 4대 중증질환 공약을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제와 "공약을 낼 때는 당연히 1인실까지 다 해줄 수는 없고…, 이는 전달 착오"라고 떳떳하게 말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 그러면서 "국민께 약속한 공약을 하나도 빠짐없이 실천하도록 하겠다"는 그럴 듯한 말로 국민을 또 우롱하려 든다. 박 당선인이 논란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갈 수 있게 돕는 세력도 있다. 그들은 무리한 공약을 강행할 때 생길 사회적 비용을 거론하며 오히려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약속했으니 토씨까지 그대로 지키라는 뜻은 아니다. 3대 비급여 100% 보장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공약이었다. 필수 의료부터 보장해주는 순차적 방법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방향은 이전 정부도 추진해온 보장성 강화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러니 박 당선자의 보건의료 공약은 '(무엇이 됐든) 더 열심히 하겠다'는 수준이지, 사실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새 정부가 국민을 조금이라도 두려워한다면 공약 폐기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납득할만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중병은 곧 가계파탄'이 되는 계층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때, 공약의 애초 취지를 이행하려는 진정성을 국민은 납득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예전부터 추진해오던 보장성 강화 계획 중 일부를 내세우며 "이것이 그것이었다"는 식이 되면 곤란하다. 거짓말을 또 다른 거짓말로 모면하려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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