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속한 자민당은 최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참가 판단기준'이란 걸 제시했다. TPP는 미국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경제공동체 구상안으로, 태평양 인근 10여개 나라가 모여 협상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좀처럼 시장개방을 않는 일본도 미국으로부터 요청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당인 자민당은 일본 정부가 본격적인 협상에 참여하기 앞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판단기준에는 우리 정부가 관심을 가질 만한 ISD, 투자자국가소송제도 포함됐다. 무소속 박주선 의원실이 공개한 자민당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국가의 주권을 손상시키는 ISD조항은 합의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ISD는 지난해 론스타가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중재를 제기하면서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탔다. 그에 앞서 한미 FTA 협상과 비준과정에서 찬반여론이 크게 일기도 했다. ISD를 찬성하는 쪽은 이 제도가 글로벌스탠다드인데다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활동하며 불리한 대우를 받을 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든다. 반대하는 쪽은 국가의 정당한 정책결정이 자본의 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고 반박한다.
보수성향의 일본 자민당이 ISD에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낸 건 이례적이다. 그러나 자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자국 내 농어촌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점, 시장개방에 소극적인 일본의 오랜 전통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국내 산업과 시장보호에 좀더 비중을 두겠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한미간 FTA에는 ISD 조항이 있다. 민주통합당은 ISD를 독소조항으로 판단, 다시 미국과 FTA 협상을 해 ISD를 빼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정부는 FTA 발효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필요한 제도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FTA 발효 직후 구성된 민관합동TF는 ISD보완대책을 연구해 최근 이 제도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FTA 재협상을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ISD를 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차기 박근혜 정부가 맡아 추진할 경우 야당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한 고위 당국자는 "우리가 ISD를 이유로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미국쪽이 원하는 부분을 맞춰줘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줘야 하는 협상의 기본원리를 감안한다면 맞는 말이다.
집권 초 이명박 대통령을 힘들게 했던 미국과의 쇠고기협상문제도 박 당선인이 곧 맞닥뜨릴 현안이다. 미국은 현재 한국이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는 걸 그 이상으로 확대해달라는 요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수입쇠고기 시장에서 미국산 비중이 꾸준히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경제통상 이외에도 외교안보부문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국쪽의 요청을 박 당선인이 마냥 뿌리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박 당선인이 현 정부의 통상교섭 실패사례로 쇠고기협상을 꼽고 있는 만큼 취임 후 어떤 묘안을 보여줄지 관심이 모인다.
이밖에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문제나 양국의 중소기업이 FTA 발효 후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등 양국간 통상현안은 FTA 발효 1년이 지난 올 상반기에 무더기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FTA가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문제들이다. 특히 개성공단의 경우 현재와 같은 한반도 긴장국면이 이어질 경우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업무를 담당할 외교통상부 공무원들이 앞으로 새로 생길 산업통상자원부로 옮겨 얼마나 빨리 자리를 잡아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 명확한 업무지침이 없는 탓에 아직까진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이다.
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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