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올해 들어 세계 경제가 부진을 벗어날 기미가 곳곳에서 나타나는 가운데 지난 한 해 경기둔화 ‘한파’에 꽁꽁 얼어붙었던 기업인수·합병(M&A) 시장도 해빙기를 맞을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글로벌 주식시장 주요 지수가 상승세를 타면서 기업들도 그동안 쌓아두었던 현금 ‘곳간’을 열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유럽 경제가 침체에 접어들고 중국경제의 경착륙 우려도 커지면서 기업 경영진들은 불안감에 차입과 신규투자를 크게 줄였고 기업 M&A 시장 자금흐름도 경색됐다. 지난달 M&A시장 분석업체 머저마켓(Mergermarket)이 집계한 2012년 글로벌 M&A 규모는 총 2조1745억달러로 2011년 대비 3% 가까이 줄었다. 이는 최근 10년간 최저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아직까지 기업들의 입장은 ‘일단 두고 보자’는 쪽이다. 글로벌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 최소 한 건 이상의 M&A에 나설 계획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는 전체의 28%에 불과했다. 이는 2012년에 비해 더 낮은 것이다. 그나마 경제회복 속도가 나은 미국 기업 CEO들의 경우 42%로 좀 더 높았지만, 나머지 지역에는 기껏해야 지난해 수준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낙관적인 변화의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로버트 모리츠 PwC 회장은 “실제로 기업 CEO들을 만나본 결과, 최근 경기회복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올해 하반기에는 더 많은 M&A거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9일(현지시간) 이미 M&A 시장이 반등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2012년 1·4~3·4분기까지 세계 M&A 건수는 2011년 같은 기간에 비해 17.4% 적었지만 4·4분기만 놓고 보면 최근 4년간 같은 기간에 비해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M&A전문 로펌 와첼립튼로젠앤드카츠는 이를 토대로 올해 더 많은 M&A 거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대해 모리츠 PwC 회장은 “지난 연말 M&A가 집중된 것은 미국 부채한도문제 협상에 따른 세제 개편 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수도 있다”면서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재무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M&A 환경은 긍정적인 편이다. 차입 부담도 크지 않고 기업들의 대차대조표 역시 건실해졌으며, 많은 기업들이 상당한 현금자산을 비축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기업 경영진들이 유독 조심스럽다는 점이 걸린다. 지난 몇 년간 ‘위기경영’ 체제가 지속되다 보니 이사회가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데가 자칫 대규모 M&A가 실패할 경우 CEO의 경력에도 오점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국 규제당국이 M&A이슈에 대해 자국의 이익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도 문제다. 미국 정부가 중국 기업들의 미국 기업 인수 시도에 대해 국가안보를 이유로 제동을 거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올해 M&A 시장이 다시 살아난다면, 에너지업계 등의 데규모 ‘메가딜’ 보다는 비용절감 추세 속에서 비주력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등의 소규모 거래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지난해 M&A 침체 속에서도 석유·가스산업계에서는 불황 후폭풍에 따른 업체간 ‘합종연횡’으로 역대 최대 M&A 거래규모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소매·소비재업종 중심으로 이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굳이 M&A가 아니더라도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던지 현금자산 사용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나온다. 씨티그룹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최근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현금자산 비중이 높은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면서 “만약 이들 기업들이 적당한 M&A 목표를 찾지 못한다면 이들은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금 인상을 선택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영식 기자 gr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