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신 기자]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이 큰 일을 해냈다. 당국은 지난해 7월 신용카드 가맹점 체계에 대해 대대적인 손질을 가해 35년동안 요지부동이던 신용카드 수수료 체계를 결국 개편했다.
당국이 가맹점 수수료 체계에 손질을 가한 배경은 이렇다.
협상력(Bargaining Power)을 가진 할인마트 등 대형가맹점 수수료율이 중소 영세가맹점에 비해 현격히 낮다는 것이다.
반면 협상력이 떨어지는 영세 중소가맹점은 대형 가맹점보다 높은 수수료를 그동안 카드사에 내 왔다.
경제 원론 차원에서 접근하면 협상력을 가진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가 영세 중소가맹점보다 낮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신용카드사는 박리다매를 통해 보다 큰 이익을 챙길 수 있고, 대형 가맹점은 자신들의 비교우위인 바게닝파워를 내세워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이와 달리 중소 영세가맹점은 카드사에 이렇다할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매상이 크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중소 영세가맹점과 가맹점 계약을 해지할 수도 없다. 해지시 카드 이용자의 불편과 불만이 쏟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카드사 입장에서 보면 중소 영세가맹점을 계륵과 같은 존재다.
배부른 대형 가맹점은 계속 배가 부르고, 배고픈 영세 중소가맹점은 계속 배가 고플 수 밖에 없는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고착됐다는 판단을 한 금융당국이 가맹점 수수료 체계에 대대적인 손질을 가했다.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는 올리고, 영세 중소가맹점의 수수료는 인하하는 것이 수수료 체계의 핵심이다.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가맹점의 고통을 경감,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일종의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카드사와 대형가맹점의 반발(지금도 통신사 등 일부 대형 가맹점이 반발하고 있지만)에도 불구, 금융당국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우여곡절 끝에 '중소가맹점 수수료 인하, 대형가맹점 수수료 인상'이라는 결과물을 돌출했다.
하지만 수수료 체계 개편만으로 금융당국의 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뛰는 자(者) 위에 나는 자(者)'가 있기 마련.
금융당국은 앞으로 카드사와 대형가맹점간 모종의 이면합의가 있는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금융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대형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한 후 떨어진 수수료율 만큼 카드사가 대형 가맹점에 캐시백(Cash back)해 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 대형가맹점의 지출을 상쇄시켜주기 위해 마케팅비용이나 유료 부가서비스의 가격을 올려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맹점 수수료율 체계 개편은 포인트 적립 기준 강화, 할인서비스 축소, 할부서비스 제한 등 수천만 명에 달하는 신용카드 소비자의 혜택 감소와 맞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자칫 예외를 인정하거나 이면합의 등을 눈감아 줄 경우 금융당국이 35년 만에 바꾼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체계가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 신용카드사와 대형가맹점에 대한 금융당국의 관리 및 감독이 더욱 중요한 시기다.
조영신 기자 as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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