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만으론 문제 못 풀어… 취업전선 대이동해야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일자리는 미래다. 소득을 재분배하고 복지를 공유하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성장 대신 고용을 말하며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이유다. 문제는 '어떻게'다. '성장률 1%=일자리 7만개'의 전통적인 일자리 공식은 유통기한이 끝나간다. 지난 10년간 유효했던 이 공식에도 예외가 늘어난다.
경제 성장률이 2.1%에 머문 지난해 일자리는 44만개나 늘었다. 한데 3.0% 성장을 점치는 올해 정부가 예상하는 신규 일자리 수는 32만개다. 성장률이 1%포인트 가까이 오르지만 새 일자리는 오히려 10만개 줄어든다는 역설이다.
고용없는 성장 속 일자리 경쟁은 세대간 전쟁으로 번졌다. 또래집단에서 경쟁에 밀린 청년층과 재취업 시장에 나온 중장년층이 '나쁜 일자리'를 두고 사투를 벌인다. 박웅서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은 그래서 시대적 화두인 분노의 뒤에 일자리 문제가 있다고 봤다. 저서 '고용없는 성장과 응원석 경제'에서 그는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 경제 구조가 사회적 갈등의 시발점"이라고 분석했다.
일자리 실종은 시대적 흐름이다. 기술 고도화는 제조업이 성장해도 사람이 필요없는 세상을 열었다. 박병원 서비스산업총연합회장은 "최근 10년 새 제조업에서만 1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1991년 516만명이었던 제조업 분야 취업자 수는 2011년 409만명으로 줄었다. 여수석유화학단지는 제조업 일자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수 조원이 들어간 엄청난 공장을 운영하는 인력은 수 십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는 여전히 제조업 중심이다. 2010년 제조업 비중은 22년 만에 다시 전 산업의 50%를 넘어섰다. 이명박 정부의 수출 대기업 지원책이 산업 시계를 되돌려놨다. 일자리를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이렇게 제조업은 변했는데 대학 진학률은 그대로다. 고교 졸업생 10명 중 8명이 대학에 간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총량이 정해진 화이트칼라 일자리에 졸업생이 몰리면 낙오자가 생긴다. 대졸백수 그룹이다. 수급 균형이 깨져 고용시장엔 잉여인력이 넘친다. 청년 고용률은 30% 벽을 넘지 못한다. 지난해 기준 실업자는 276만명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29위)이다. 대학진학률이 우리의 절반인 독일은 청년 고용률이 40%를 넘는다. 경제 사정이 나쁘다는 미국·영국도 우리보다 청년 고용률이 높다. 덴마크는 60%를 웃돈다.
대학 진학률을 낮추고 서비스업을 키우자는 얘긴 여기서 출발한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학을 "청년실업 인큐베이터"라고 부른다. 대졸백수를 만드는 대학 진학률을 떨어뜨리는 게 청년실업을 풀 실마리라고 봤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유경준 선임연구위원은 서비스업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는 "90년대 초반까진 수출을 통해 경제가 성장하면 고용이 늘고 소득이 고루 분배되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지만,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성장을 해도 고용이 늘지 않아 분배 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90년대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속속 노조가 생기면서 제조업의 임금이 빠르게 올랐고, 기업들은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수출이 늘어도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이유다.
유 연구위원은 "고령화와 보육 서비스 보편화, 핵가족화 추세를 고려하면 서비스업에서 고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4%에 머무는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OECD 평균치인 10%까지만 끌어 올려도 일자리 부족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 일자리 정책을 맡고 있는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과로하는 대한민국이 좀 쉬어야 한다"고 했다. 이 장관은 "소수가 정규직 일자리를 독점하며 장시간 일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럽통계청(EUROSTAT)의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근로자 수 기준 고용률'은 63.8%(2006년 현재)로 EU 27개국 평균치 64.3%를 밑돈다. 네덜란드(74.3%)나 독일(67.2%)과 비교하면 격차가 더 크다. 흥미로운 건 '일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따진 고용률(FTE)'이다. 이 기준으로 본 우리나라의 고용률은 58.0%. 네덜란드(57.3%)나 독일(57.8%)보다도 높다. 과로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 장관은 "병원 야간개장이나 파트타임 판ㆍ검사 제도를 도입하는 발상의 전환"을 제안했다. 공급이 부족하고 구직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의료ㆍ법률서비스에서 차별받지 않는 파트타임 시장을 열어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전국 보건소와 일부 법원ㆍ검찰청에서 이런 제도를 시범 운영한 뒤 사회 각 분야로 반듯한 파트타임 일자리를 늘려가면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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